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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포르투갈 역사 바꾼 쓰나미

입력 2009. 06. 30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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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캉디드는 쓰나미로 인한 리스본의 파괴를 목격한 증인으로 난파되어 해안으로 밀려왔다. 마침 희생양을 찾던 조사관에 의해 체포되어 태형에 처해진다. “이 사건은 하나님에 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입니다.” 캉디드의 친구인 철학 교사의 주장은 이단으로 몰리게 되고 그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만다.》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에 나오는 이야기로 리스본을 강타했던 쓰나미가 사건의 배경이 된다.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평화롭게 시작하고 있었다. 주일이었던 이날 아침 많은 사람은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천지가 흔들리면서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가장 먼저 리스본의 석조 성당이 무너져 내렸다. 1파가 지나간 다음 바로 뒤이어 2파, 3파가 덮쳤다. 2파까지 견뎠던 건물들도 3파 때는 다 무너졌다. 1파에서 3파까지 겨우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3분 동안에 당시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던 리스본은 땅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리히터 규모 8.7의 강한 지진이 포르투갈을 두들긴 것이다.
    지진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지진이 발생한 1시간 20분 후 거대한 쓰나미(지진해일)가 밀려왔다. 쓰나미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대한 파도는 바닷가의 모든 창고와 건물, 그리고 엄청난 사람들을 끌고 바다로 가 버렸다. 쓰나미는 계속해서 3파까지 리스본을 강타했다. 강력한 쓰나미는 지진에도 버티고 남아 있던 건물들을 다 무너뜨렸다. 강가의 부두에 있던 사람들은 쓰나미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갔다.
    약 27만5000명이 살고 있었던 리스본 항구에서 다음날 아침 움직이는 사람들은 불과 수백 명뿐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약 6만 명 이상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한다.‘쓰나미’라 불리는 지진해일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해저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해저 지각이 크게 융기(隆起) 또는 침강(沈降)할 때 이와 함께 해수면이 요동쳐 파장이 긴 파로 전파되는 현상을 지진해일이라 한다.

    쓰나미가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다에서의 대규모 지진이다. 일반적으로 쓰나미는 수직단층운동에 의한 규모 6.3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진원 깊이 80km 이하의 얕은 곳에서 발생한다. 리스본을 강타한 쓰나미는 포르투갈 국력을 크게 약화시킨 엄청난 재앙이었다. 많은 문화재가 영원히 소실됐다. 티치아노·루벤스·코레지오 등의 거장이 그린 수백 점의 그림이 재로 변해버렸다.
    초기 포르투갈인들의 항해와 관련된 원본 지도와 해도 등도 없어졌다. 수십만 권의 희귀한 책과 고문서들이 사라졌다. 지진과 쓰나미 재앙으로 포르투갈은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어진 겨울 동안 수많은 사람이 전염병과 굶주림, 그리고 추위로 죽어갔다. 포르투갈의 왕 호세는 리스본으로 돌아와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즉각 모든 곡식을 사들여 식량 구호체계 및 의료 공급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 등의 식민지에서 약탈해 온 재산과 영국에서 온 원조물자에 의해 간신히 재건됐다. 그러나 대서양을 주름잡고 거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했던 포르투갈의 역사는 그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시는 세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쓰나미는 천재(天災)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조기 경보체계의 구축과 함께 다양한 재난방호체제를 갖춘다면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자연현상이기도 하다. 다음달 23일 개봉을 앞둔 ‘해운대’는 쓰나미를 소재로 한 재해영화다. 우리나라도 쓰나미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쓰나미에 미리미리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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