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기도할 때만 무릎을 꿇습니다.”생도시절 감독관이 벌칙으로 무릎을 꿇으라고 하자 나폴레옹이 거부하며 했던 말이다. 이런 기개가 위대한 장군이 된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 역사가들은 그가 역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날씨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런 배경도 없고, 돈도 없고, 외모도 형편없었던 그가 프랑스를 장악하는 장군이 된 배경에는 날씨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사관학교에 입학해 육군소위로 임관한 후 대위로 진급하는 데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만큼 그는 평범한 장교였다. 그런 그가 이탈리아로 배속받아 가던 중 툴롱에 들렀다가 포병의 지휘를 맡게 되는 행운을 차지한다.
그는 이곳에서 시가지를 점령한 왕정주의자들과 영국군을 맹포격해 승리를 거둔다. 이 전투 후에 장군으로 진급,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대위에서 일거에 장군으로 진급한다는 것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평시에는 불가능하다. 전쟁이나 비상상황에서도 상당히 드문 편에 속한다. 이 당시 프랑스는 연이은 가뭄과 우박, 그리고 엄청난 추위와 이상기상으로 국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프랑스 국민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의 와중이었기에 급격한 신분상승이 가능했다. 소빙하기의 추위와 날씨가 나폴레옹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나폴레옹의 등장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조세핀이다. 특별한 가문의 배경이 없었던 나폴레옹이 자기의 출세에 도움이 될 사람을 찾다가 만난 여인이 바로 조세핀이다.
흥미롭게 조세핀도 날씨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의 마티니크 섬에서 살았던 조세핀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섬을 강타한 허리케인으로 부유한 농장주였던 그의 아버지가 파산해 버렸다. 조세핀은 가난에 직면하게 됐다. 출세욕이 뛰어났다고 전해지는 조세핀은 과감히 섬을 떠나 파리로 진출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말재주로 사교계의 꽃이 됐다.
젊고 우아하며 요염했던 조세핀은 곧 프랑스군 총사령관인 바라와 가까운 사이가 된다. 이때 툴롱 전투에서 명성을 떨치고 파리로 귀환한 나폴레옹을 만나게 된다. 나폴레옹은 출세의 지렛대로 그녀를 이용한다. 조세핀과 가깝게 지냈던 프랑스군 총사령관 바라는 1795년에 나폴레옹을 부사령관으로 진급시켰다. 그가 5인 집정내각의 한 사람이 되자 1796년 나폴레옹에게 프랑스군의 총사령관 자리도 물려준다.
나폴레옹은 바라 장군의 주선으로 조세핀과 결혼하고 이탈리아 주둔군을 지휘해 오스트리아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24세의 나이에 장군으로 진급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도 있었지만 유럽의 소빙하기 기후로 인한 혁명 시기라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27세의 나이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에 부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세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날씨가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허리케인이 조세핀의 고향을 휩쓸어 버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과연 조세핀이 없는 나폴레옹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나폴레옹이 프랑스가 자랑하는 위대한 장군이 되는 데는 날씨의 도움, 천부적인 재능, 리더십이 있었다.
여기에 프랑스 혁명 와중에 만들어진 징병제가 날개를 달아주었다. 징병제로 프랑스는 1794년에 무려 116만9000명의 현역군인을 보유한 유럽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으니 말이다.“도전하는 자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법이다.” 나폴레옹의 말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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