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저격수의세계

<48>아프가니스탄 로버츠 고지의 저격전

입력 2008. 12. 30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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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의 잔존 세력과 오사마 빈 라덴을 색출하기 위한 미군의 작전 중, 2002년 3월 1일부로 아나콘다작전이 개시됐다. 그것은 사히코트 지방의 탈레반과 알 카에다 패잔병들을 초토화시키기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미군은 산악지대에 대한 공중정찰과 적들의 활동을 무시한 채 막강한 화력만 믿고 작전을 개시했는데 헬리콥터 강습지역은 400여 명의 알 카에다가 숨어 있고, 강력한 화력이 배치된 위험지역이었다.

    이곳에서 미 공군의 오폭으로 특수부대원 한 명이 희생됐다. 그러자 정확한 항공유도와 정찰을 위해 미 해군의 정예 실(SEAL) 팀이 급파됐다. 아울러 AC130기를 출동시켜 적외선 탐지로 산악지대를 수색했지만 적의 흔적은 오리무중, 결국 실 한 개팀 7명이 타구르과(Takur Ghar) 고지로 직접 랜딩하게 됐다.

    CH47 치누크 헬기에 탑승한 네이비 실이 산 정상에서 선회하자 땅속에 숨어 있던 알 카에다가 나타나 치열하게 대공사격을 가했다. RPG-7 로켓과 러시아제 구경50 중기관총이 헬리콥터로 집중됐다. 적탄을 피해 급선회하는 헬기에서 실 대원들은 정확한 사격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랜딩을 준비하던 실의 로버츠 하사가 헬기에서 지상으로 떨어져버렸다.

    RPG를 맞은 헬리콥터도 전원공급에 차단돼 결국 현장에서 7km를 벗어나 산악지대에 불시착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시착한 치누크 헬기가 적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이러한 상황을 GPS와 무인정찰기를 통해 관찰한 미군은 실 한 개팀을 다시 산 정상으로 급파했다. 미군의 작전은 이제부터 추락한 로버츠 하사의 구출작전으로 전환하게 됐다.

    “죽거나 부상당한 전우를 전장에 버려두지 않는다”는 미군부대의 전통, 그러나 목표지점으로 다가가던 치누크 헬기가 다시 기관총탄을 맞고 연료통과 엔진서킷에 큰 손상을 입어 약 2km 떨어진 하단부에 추락했다. 눈 덮인 혹한의 고지에서 대원들은 곧 알 카에다의 포위망 속에 빠져버렸다.

    고지의 벙커를 향해 스토너 SR-25저격총을 쏘며 공격을 개시했지만 오히려 선두의 존 채프먼 중사가 저격탄을 맞아 즉사했고, 다른 두 명의 대원이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이 무렵 산 정상 부근에 추락한 닐 로버츠(Roberts) 하사는 이미 알 카에다에 발각돼 피할 사이도 없이 AK-47총을 맞고 전사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다시 미군 구조부대인 레인저 신속 대응팀 35명이 두 대의 치누크를 타고 출동했다. 목표부근에 접근, 지상 50피트 정도로 기체가 하강하자 알 카에다의 총알이 다시 작렬했다. 빗발치는 기관총탄과 소총탄이 조종석으로 집중됐다. 강화유리를 뚫은 탄환이 순식간에 조종사의 머리에 두 번, 가슴에 여덟 번이나 명중했다.

    그러나 방탄조끼와 헬멧 덕분에 조종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엄청난 총알의 운동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조종사는 위기를 벗어나고자 스로틀을 당기고 헬기의 미니건 사수는 요동치는 기체에 매달려 분당 3000발의 대응사격을 퍼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때 RPG 로켓탄이 다시 헬기의 오른쪽 엔진에 맞자 더 이상 출력을 내지 못하고 지상에 주저앉았다.

    “쾅!….” 기체의 충격은 엄청나게 컸다. 승무원과 대원들이 바닥에 제멋대로 널브러지자 이와 때를 맞춰 AK소총과 러시아제 12.7mm 데쉬케이(DShK) 중기관총이 불을 품었다. 기체의 열린 창으로 날아온 저격탄에 미니건 사수가 쓰러지고 뒤쪽 3명의 대원이 피격됐다.

    레인저들이 빠져 나왔으나 알 카에다는 50여m 위의 벙커에 숨어서 조준사격을 하고 있었다. 벙커 파괴가 급선무였다. 미 공군의 항공폭격이 산 위로 다시 집중됐다. 다른 레인저 대원들은 산 아래 800m 떨어진 지점에 착륙해 급경사를 기어올랐다. 러시아제 PKM 기관총탄과 박격포탄이 계속 쏟아졌다.

    결국, 이날 전투는 미 공군의 엄청난 폭격과 미사일 공격이 집중돼 알 카에다의 진지를 붕괴시키고 특수부대원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전투가 종결되고 미군들이 사상자를 수습할 때 갑자기 한 발의 저격탄이 건너편 고지에서 날아왔다. 부상자를 돌보던 공군 구조대의 커닝햄 상병이 마지막으로 쓰러졌다. 이 비극의 현장을 미군들은 로버츠 고지라고 불렀다.

    이 전투는 단순한 보병전투에 첨단 특수부대를 축차적으로 투입, 육탄으로 전투를 감당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공격만 배우고 방어하는 것을 몰랐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로버츠 고지에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미 특수부대원 8명이 사망하고 치누크 헬기 두 대가 격추됐다. 알 카에다는 비록 수백 명이 죽었지만 이러한 무모한 전투는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 준 사건이었다.

    <양대규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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