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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 -96- 5사단 이끌고 서울로 출동

입력 2007. 08. 2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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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교들을 세워놓고 5·16 거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장교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미 내가 5인 혁명위원회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그루더 미8군사령관이 다녀갔다. 그는 혁명을 반대한다. 이한림 장군과 6군단을 동원해서라도 거사를 막겠다고 한다. 이것이 군 본연의 임무는 아니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제관들이 나의 명령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나를 따르는 자만이 지금 곧 서울로 향할 것이다.”

지휘관들이 모두 나를 따르겠다고 외쳤다. 이미 그들은 나름대로 소신을 정리했던 것 같다. 나는 지휘관들의 결의를 듣고 박정희 장군의 뜻을 간명하게 전했다.“우리 5사단이 지금 서울로 출동해야 거사가 완수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다. 즉시 출동 준비하라.”

이렇게 해서 1961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5사단 병력은 서울로 향했다. 사단 직할부대 병력과 이용성 대령의 36연대 전 병력, 35연대 일부 병력을 끌고 나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제지를 받고 말았다. 1군 후방검문소에 이르자 1군부사령관 윤춘근 소장이 나타나 나를 막아선 것이다.

“채장군 돌아가시오. 혁명은 성공할 수 없소. 매그루더 사령관과 참모총장, 1군사령관이 출동한 모든 병력을 진압하라고 명령했소. 죽지 않으려거든 빨리 원대복귀하시오.”“부사령관 각하! 우리에게 돌아가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공산 세력을 막는다는 일념으로 거사한 것입니다. 부사령관 각하께서도 지지성명을 내십시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의 부하 지휘관들이 윤부사령관을 에워쌌다. 상당히 위협적이고 살벌한 풍경이었다. 하긴 죽음을 각오하고 일어선 마당 아닌가. 윤부사령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로 빠지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다.망우리를 지나 중랑천 근처까지 진출하자 박정희 장군을 비롯한 몇몇 장교들이 마중나왔다.

“이제 야전군 대부대가 합류했으니 혁명은 성공했소!”박장군이 나를 얼싸안자 병사들이 와! 하고 ‘혁명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 나는 동대문까지 진출해 주력부대를 주변에 배치시키고 박장군과 함께 육군본부로 들어갔다. 육본은 문재준 대령이 이끈 6군단 포병들이 배치돼 있었다. 이렇게 병력이 출동했지만 아직 상황을 안심할 수 없었다.

장도영 참모총장의 지지성명을 받아 만천하에 공표해야 하는데 그의 태도가 모호한 것이다. 나는 박정희 장군에게 참모총장실로 가자고 독촉했다. 전쟁 중에도 철모를 쓰지 않았던 내가 철모를 쓰고 권총까지 차고 박정희 장군에 앞서 참모총장실 문을 발로 걷어차며 들어섰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완전무장한 내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들이닥치자 장도영 총장은 불쾌해하면서도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총장 각하! 왜 혁명지지 방송을 하지 않습니까. 속히 해군과 공군·해병대 사령관을 소집해 지지 성명을 내십시오!”그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위협적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제 야전군 부대가 동대문에 집결해 있습니다. 또 무전연락을 하면 다른 야전군이 합류할 것입니다.”야전군이 서울에 들어온 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내 말이 거칠기도 했지만 장총장은 그제서야 체념한 듯 곧 각군 총장을 소집했다. 야전군이 서울에 입성했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컸다. 무엇보다 모호한 장도영 총장의 태도를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성공이냐 실패냐의 분수령을 내 부대가 분명하게 갈라놓은 셈이다.

이후 모든 포고령과 ‘혁명공약’은 장도영 총장의 이름으로 나갔다. 박정희 장군이 거사를 주도했지만 장도영 총장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1948년 숙군 시절, 사상문제로 박정희 장군이 치명적 위기에 몰렸을 때 철저히 그를 비호해 준 사람이 바로 장도영 장군이었다. 박장군은 또 전군이 거사를 지지하고 있다는 상징으로서도 참모총장을 내세우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채명신 예비역 육군중장·전 주월한국군사령관/정리=이계홍 용인대 교수·인물전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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