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군사문화재

<146>임진왜란 당시 전황 보고서

김병륜

입력 2006. 12. 20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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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7월 5일 왜선 한 척이 녹도 앞바다에 상륙했다 하기에 군대를 이끌고 별장 송구 등과 함께 입성했습니다. 마침 같은 달 9일 왜선 두 척이 남당포에 상륙해서 행패를 부리므로 대번에 싸워 적을 죽였으나 적 전사자의 정확한 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적은 많고 우리는 적어 단지 적 왜적 두 명의 목만 자르고 진으로 돌아와 왜인의 머리 2개, 장검 한 자루, 단검 두 자루, 왜복 2점 등을 올립니다.”
    이 내용은 최희량(1560~1651)이 남긴 ‘임란첩보서목’(壬亂捷報書目·사진)의 한 대목이다. 임란첩보서목은 임진왜란 당시 흥양현감이자 전라좌도 수군 소속의 지휘관이었던 최희량이 그의 상관에게 보고한 각종 행정문서, 다시 말해 보고서를 모은 것이다.
    조선시대 때는 군대나 행정기관에서 상하급자 사이에 오고가는 각종 행정문서의 종류와 양식을 엄격히 구별했다. 관찰사·병사·수사 등 지방의 주요 지휘관이나 행정책임자가 국왕에게 보고하는 문서는 ‘장계’다. 장계의 대표적 사례로는 이순신 장군이 국왕에게 보고한 문서들인 임진장초를 꼽을 수 있다.
    주로 중앙 행정부서나 주요 관원이 국왕에게 간단한 보고를 올리는 것을 ‘초기’, 중요 사안을 보고할 때는 ‘계본’, 그보다 중요성이 떨어지지만 형식을 갖춰 보고하는 것을 ‘계목’이라고 한다.
    동급 관원이나 기관 사이에 주고받는 문서는 ‘평관’이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하달하는 문서는 단순히 ‘관’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때 행정기관이나 군대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올리는 문서는 ‘첩정’이다. 군에서 오고간 첩정은 당시 군대의 운영 실태와 전투 실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높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군대 관련 첩정은 매우 희귀한 편이다. 임금에게 올리는 장계보다는 격이 낮아 정성을 들여 보존한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다.
    최희량의 임란첩보서목은 하급자인 흥양현감이 수군 주요 지휘관인 수사나 통제사 등에게 보고한 문서, 다시 말해 전형적인 첩정 형식의 행정문서다. 문화재당국은 임란첩보서목이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임진왜란 당시 수군 첩정이라는 점을 감안, 1979년 7월 26일 보물 660호로 지정했다.
    조선시대 첩정에는 정식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첨부 문서인 서목이 따라 붙는다. 보고받은 상급자는 첩정 본문은 보관하고, 첨부 문서인 서목에는 결재 여부를 표기해 하급자에게 회신하는 것이 당시 관행이었다. 최희량의 임란첩보서목에 이순신 장군의 결재 표시(수결)가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임란첩보서목은 최희량의 사후 흩어져 있던 것을 그의 후손인 최기정 씨가 19절지로 배접, 문서첩으로 만들었다. 문서의 양은 총 7건, 10장으로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임란첩보서목은 희귀한 군대의 첩정이라는 점에서도 가치있지만 임진왜란과 수군의 실상을 밝히는 데도 결정적 의미가 있다. 특히 군함에 탑재되는 각종 무기와 장비의 수량 통계표 등을 포함하고 있어 당시 판옥선의 무장 수준, 주요 탑재 화포의 종류와 수량, 탑재하는 포탄과 화살 등 발사체의 수량, 사용한 활의 종류 등을 밝히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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