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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사문화재 순례<145>비변사지도

김병륜 기사입력 2006. 12. 13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2:42

지도는 군대의 필수품이다. 교통로·지형·거리를 알 수 있는 지도가 없다면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많은 군용 지도가 만들어져 활용됐다.

조선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이용되는 지도는 주로 홍문관·규장각·비변사 등에서 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홍문관이나 규장각은 학술기관이지만 비변사는 일종의 상설 국가안보회의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의 기관으로 국방은 물론 주요 국정 현안을 종합적으로 처리했다.

기관 성격이 다른 만큼 지도 용도도 달랐다. 홍문관·규장각에서 만든 지도는 지방 통치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면, 비변사에서 제작한 지도는 기본적으로 군용지도가 많았다.18세기 비변사에서 만든 ‘비변사인 방안지도’(사진)는 우리나라 전국을 5만분의 1 내지 8만분의 1의 축척으로 그려낸 초대형 지도책이다. 일명 비변사지도라고도 부르는 이 지도는 거의 1m 크기의 지도 수백장으로 구성된 지도책이다.비변사지도 중 경상도지도는 각각 세로 106~108㎝, 가로 83~89㎝ 크기의 총 71개 지도로 구성되고 다른 도의 경우도 비슷하다.

19세기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가 16만분의 1 축척인 점을 고려하면 비변사지도가 정확성은 떨어질망정 더 크고 자세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비변사지도의 중요한 특징은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방안(方案) 위에 그렸다는 점이다. 방안은 현대 지도의 경위선이나 축척과 비교해 봄직한 기능을 했다. 모눈종이라고 할 수 있는 방안을 사용한 종이 위에 지도를 그리면 위치·거리·방향의 정확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당연히 군사지도로서의 실용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에는 국경지역을 상세하게 그린 군용지도인 관방지도도 다수 제작했다. 이미 조선 전기부터 영안도연변도, 연변성자도, 양계연변방도, 서북면연변도 등 수많은 국경지역 상세도가 제작·활용됐다. 특히 18세기 초 제작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는 조선·청나라의 국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작된 국경지역 상황도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흔히 지도라고하면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는 갑자기 돌출한 결과물이 아니라 꾸준히 발전해 온 한국 전통 지도 제작 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도다. 대동여지도보다 50~100년 정도 빠른 18세기 후반과 말기에 걸쳐 제작된 동국대지도나 아국총도, 조선팔도지도의 정확성은 대동여지도에 육박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를 제외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지도가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팔도총도이기 때문에 김정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제대로된 지도가 없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기밀 유지를 위해 왕실에서는 정밀지도를 사용·보관하고 민간에 배포되는 팔도총도 같은 지도는 의도적으로 조잡하게 만들었다”며 “조선 전기인 1557년에 제작된 국보248호 조선방역지도에서 이미 한반도의 윤곽이 제법 정확히 나타날 만큼 우리나라 지도 제작 기술 수준이 높았다”고 강조했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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