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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사문화재 순례<143>의병진 군공책

김병륜 기사입력 2006. 11. 29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2:40

역사적으로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한 무명의 의병장이 남긴 전공기록이 2002년 1월 보물 1334호로 지정됐다.

‘의병진 군공책’(義兵陣 軍功冊·사진)은 월곡 우배선(1560~1621년)이 임진왜란 당시 휘하 의병부대의 편성과 구성원 88명의 신분·전투 시기·전투 장소·전공을 기록한 책이다.

우배선은 대구 지방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공로로 임진왜란 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봉될 만큼 당대에는 전공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88명 규모의 소규모 의병을 이끌었던 탓에 현대에는 의병장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은 적이 없는 인물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비중이 크지 않은 우배선의 ‘의병진 군공책’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 전투 기록 중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된 것은 이례적이다.

돌려 생각해 보면 우배선 개인의 비중과 상관없이 ‘의병진 군공책’ 자체가 의병 전투 기록으로 탁월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쓴 기록은 수없이 많이 있다. 하지만 기록의 대부분은 의병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이거나 의병장들의 단체 결의 내용을 담은 회맹문, 혹은 일기·전투 회고담 등이다.하지만 ‘의병진 군공책’은 다르다. 의병에 참가한 장수 이하 병사들의 신분과 전투 참가 기록, 개인별 전과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전과 기록도 목을 벤 사례는 참살(斬殺), 활로 쏘아 죽인 것은 사살(射殺), 도끼나 몽둥이 등 타격 무기를 이용한 전과로 추정되는 작살(斫殺)로 구분할 만큼 자세한 것이 특징이다.‘의병진 군공책’에 따르면 의병장 우배선의 전과는 참살 9건, 사살 26건, 작살 11건으로 총 46건이다. 우배선 휘하 88명의 의병 중 최고 전과를 거둔 사람은 원래 바다에서 근무하는 수군(水軍) 병사지만 의병진에 합류했던 장몽기라는 인물이다. 장몽기는 참살 5건, 사살 33건, 작살 13건으로 전체 전과가 51건에 달한다.

반대로 가장 전과가 적었던 사람은 육군 정병이었던 도붕이라는 인물이다. 그의 전과는 사살 1건뿐이다.이 정도라면 개인별 전투 기량의 차이와 주로 사용한 무기·전투 형태를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전체적으로 사살이 압도적으로 많아 의병들의 주무기가 활임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서에 첨부된 신상명세를 통해 의병들이 원래 속했던 각 부대의 전투기량을 유추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 임란왜란 당시의 의병 전투 실상을 밝히는 데 너무나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인 것이다.

‘의병진 군공책’에는 우배선 휘하 의병 88명 전원의 신분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의병장의 신분에 대해 언급하는 책은 많으나 특정 부대 의병으로 활동했던 전체 병사의 신분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자료는 ‘의병진 군공책’이 유일하다.‘의병진 군공책’에는 일반 양인 출신뿐만 아니라 양반 신분으로 추정되는 정로위 도언수부터, 중인 신분인 향리 석백, 사노비 문을동비나 절에 예속된 노비 백천수까지 등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양반·중인·양인·노비 등 신분에 상관없이 의병으로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막연하게 짐작했던 의병들의 구체적인 면면을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를 ‘의병진 군공책’이 쥐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단양 우씨 열락당 종손이 보관하고 있는 ‘의병진 군공책’은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사라질 뻔한 의병들의 이야기를 40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는 소중한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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