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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로 엮는軍 軍人 軍隊<4>고구려<下>

입력 2005. 07. 2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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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의 신묘한 계책은 천문을 꿰뚫고, 절묘한 방략은 지리를 통달했소. 전승의 공이 이미 그만하면 높으니, 족함을 알거든 여기서 그쳐 주기 바라오.”

    고구려를 소재로한 우표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영토 확장과 관련된 것이다. 특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와 싸워 이기는 전투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한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동방의 강국 ‘고구려’ 정벌에 나선 것은 612년(영양왕 23년). 당시 탁군(지금의 베이징)에 집결한 12군의 병력은 무려 113만4000여 명으로, 수륙 양로를 이용해 고구려를 향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방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요동성에서 발목을 잡혀야 했다. 다급해진 수나라는 우중문·우문술을 지휘관으로 30만5000명의 별동대를 편성, 평양성을 치기 위해 진군해 들어왔다.

    그러나 내부 불화와 물자 부족 등의 문제점이 불거졌고, 이를 간파한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를 내륙 깊숙이 유인한 뒤 거짓으로 항복, 수나라 군이 퇴각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수나라 군사들의 퇴각이야 말로 바로 을지문덕의 신묘한 계책에 걸려드는 것이었다. 살수를 건너 퇴각을 재촉하던 수나라 군대는 을지문덕의 집중 공격을 받고 전멸, 불과 2700여 명만이 살아 돌아갔다.

    수나라는 이로 인해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향해 들어왔던 우중문이 평양성 밖 30리 지점에 숙영하고 있을 때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위와 같은 시 한수를 지어 보낸다. 이 시는 겉으로는 우중문의 전략과 전공을 치켜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조소와 위협의 뜻이 함축돼 우중문으로 하여금 속은 것을 깨닫고 퇴각을 서두르게 했다.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확장은 살수대첩이 있기 훨씬 이전인 광개토대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391년 18세의 젊은 나이에 제19대 왕위에 오른 광개토대왕은 사람 됨됨이가 영특하고 지휘력이 신묘했다. 재위 21년간 백제를 누르고 신라를 도와 왜구를 물리쳤으며 북쪽의 여러 부족 국가를 굴복시키는 등 남정북벌, 동토서략 하면서 대외적인 정복활동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의 거침없는 기상은 마침내 우리 역사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확장했다. 북으로 흑룡강, 남으로는 아산만, 동으로는 연해주, 서로는 중국의 북경 부근까지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영화가 있으면 쇄락이 있는 법. 그런 고구려도 통일된 중국 세력과 국제 전쟁을 계속하다가 660년부터 신라와 당나라의 협공을 받아 8년간을 싸우다 패망했다. 중국이 최근 동북공정을 통해 영광스러운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할 만큼 고구려는 당시 동북아 최강국이었다.

    우표를 취미로 모으는 사람들이 고구려 소재 우표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찬란히 빛나는 고구려의 기상과 영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영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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