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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교양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것은 매일 있다”

(14) 곰돌이 푸: 진짜 가치 있는 것 찾기
2018. 10. 11   16:58 입력 | 2018. 10. 11   17:16 수정

현실에 찌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잊고 있던 어린 시절 떠올리며 ‘힐링’

일상에 지친 어른들에게 위로 되어줘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많은 관계와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만 다섯 살짜리 아들은 매일 공룡들과 상상 속의 전투를 치르지만 세 살 때에는 토끼 인형에 빠져 있었고 슬슬 포켓몬스터로 옮겨가는 중이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갈 즈음엔 모바일 게임 때문에 수많은 공룡과 서서히 관계가 끊어질 것이고, 축구나 야구에 빠지게 된다면 장난감들 대신 온갖 스포츠용품이 방을 채우게 될지 모른다.



바라보기만 해도 치유되는 어린시절 인형

하지만 그렇게 관계가 끊어진 어떤 존재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응축시켜 보관해 놓는 일종의 메모리칩이다. 언젠가 어린 시절의 사진을 뒤져보다 기린 인형 밑에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고작 두세 살의 어린 나이여서 기억날 리 만무할 텐데 그 순간이 마치 낡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세 쌍둥이 동생들에게 밀려나 작은방 구석에서 울고 있던 나를 참 따뜻하게 위로해 줬던 그 인형은 치유라는 단어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렇듯 일정한 시기에 충분히 교감을 나누었다면, 세월이 아무리 지났어도 그저 바라보고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한낱 인형이나 장난감이 아니라 때로는 수호천사이며 상담사이며 스승이기도 하다.

그 단순하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다룬 영화가 선물처럼 다가왔다. 언젠가는 꼭 한 번은 봐야 할 영화 ‘곰돌이 푸 : 다시 만나 행복해’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스틸.

실제 동물원에서 살았던 아기곰 모티브

‘곰돌이 푸’라고 번역돼 있어서 원작 동화나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꿀을 좋아한다는 빨간 티 곰 인형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 사는 모든 친구들의 이야기다. 원작을 쓴 앨런 알렉산더 밀른은 애초에 동화작가를 꿈꿨던 사람은 아니었다. H.G.웰즈의 제자였던 만큼 원래 판타지나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몸이 약한 아들의 건강 때문에 런던에서 꽤 떨어진 시골집 서식스로 이사를 하게 되고, 런던 동물원의 명물 흑곰 위니를 사랑하던 아들을 위해 곰 인형을 선물하고는 그 곰이 뒷산 숲에서 로빈과 함께 뛰노는 이야기를 밤마다 들려주었다. 피글렛, 티거, 래빗 등 로빈의 인형이 늘어날수록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많아졌고, 밖에서 잘 뛰놀지 못했던 로빈은 그 이야기 덕분에 숲에서 뛰놀 수 있는 건강한 어린이로 자랄 수 있었다.

이 베갯머리 이야기는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의 따뜻한 삽화와 만나면서 동화책으로 발간,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책이 됐고, 스테디셀러 캐릭터가 됐다가 1961년부터 디즈니가 판권을 사면서 디즈니 전체 매출 중 20%를 차지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와 성장에도 이야기 속의 크리스토퍼 로빈과 푸의 우정은, 그리고 오늘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헌드레드 에이커 숲 친구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곰돌이 푸’라는 문화콘텐츠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유통되면서 전혀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퍼뜨리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실사로 만들어 더 생동감 있게

실사로 만들어진 이번 영화 버전은, 크리스토퍼 로빈을 어른으로 만들어 오늘의 현실이 숲의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로빈은 친구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토이스토리의 앤디보다도 쉽게 잊어버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초등교육부터 기숙학교에서 주입식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라, 전쟁으로 죽을 고비까지 넘겨야 했던 그는 세상이 전쟁터라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옛 친구들을 떠올릴 시간조차 없었다. 전쟁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더니 이미 홀로 아이를 낳고 고생하던 아내가 있었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전쟁터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그는, 사랑하는 딸에게 푸나 헌드레드 에이커 숲의 친구들 이야기 대신 빅토리아 왕조의 함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세상 모든 아빠들이 비슷한 상황이지만 아이들의 그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우리의 위니 더 푸는 헌드레드 에이커 숲을 떠나는 엄청난 모험을 시작하고,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을 만난다. 정말 다행인 것은, 푸의 목소리가 로빈에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된다’는 푸의 철학을 자신의 삶 속에서 정책으로 구현해 내고 만다. 다시 만난 푸가 해낸 일이고, 푸와 함께 다시 발견한 헌드레드 에이커 숲만의 세계관이 해낸 일이다.



잊고 있던 일상 속 행복 일깨워

‘소확행’이 유행하고, ‘욜로족’이 횡행하는 것은 세상이 말세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원래 인간이란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것은 매일 있다’는 낙관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랑 가까이 살을 대고 사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공동의 적을 막기 위해서 함께 지혜를 모으는 시간에서 왠지 모를 흐뭇함을 느끼는 존재들이 바로 사람이다. 그런 흐뭇함이 영화를 통해 가슴에 번져갈 때 “그래, 사는 게 뭐 별거 있겠어?” 하면서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팝콘을 한 움큼 쥘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 그래서 푸는 언제나, 눈물 겨운 반가움이고, 새로운 발견일지도 모른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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