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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전쟁기념관 기증유물 이야기

6·25 참전 미군 병사의 ‘유품이 된 선물’

<7> 아리랑 스카프에 얽힌 사연
2018. 02. 13   17:54 입력

 클라이드 상병 “곧 제대한다”는 편지와 스카프

1952년 봄 어머니에게 보내고 안타깝게 전사

 

 

‘A RI RANG A RI RANG A RA RI-YO― A RI RANG HIGH HILL I ―CLIMB IF-YOU LEAVE FROM ME AND IF YOU GO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아리랑 영문가사의 일부다. 평범한 가사의 무한 반복처럼 들리지만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아리랑은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조국을 떠올리게 했던 애환 섞인 노래였으며, 낯선 땅에서조차 전쟁의 고통을 견디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오늘은 6·25전쟁 당시 미국 청년 병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아리랑 스카프’에 얽힌 이야기다. 1952년 봄, 미군 클라이드 상병은 어머니를 위해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기다려 달라’는 당부와 함께 ‘어머니가 생각나 편지와 함께 보낸다’며 스카프(사진)에 적힌 아리랑을 소개했다. 그러나 클라이드 상병은 결국 전사했고 그가 보낸 스카프는 어머니에게 남긴 유품이 되었다. 먼 타국에서 전사한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클라이드 부인은 아리랑이 적힌 스카프를 손에 쥐고 흥얼거리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클라이드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유품을 정리하던 가족은 아리랑 스카프를 수집가에게 넘겼다. 이후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이 한 수집가로부터 이 스카프를 구입하게 됐고, 2010년에 전쟁기념관에 기증했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 연재하던 ‘유물로 만나는 6·25’ 기사를 흥미롭게 읽다가 기증을 결심한 진 관장은 “내게도 무척 소중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지만 전쟁기념관에서 더욱 많은 분에게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기증 계기와 소감을 밝혔다.

‘아리랑 스카프’는 본래 6·25전쟁에 참전한 외국 군인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음을 바친 한국을 기억하거나 고향의 가족에게 선물하기 위한 용도였다. 시기에 따라 디자인은 조금씩 다르다. 기념관 내 기증실에 전시된 ‘아리랑 스카프’에는 아리랑 영문가사와 악보, 한반도 지도, 용, 참전국 국기와 부대마크 등이 그려져 있다. 스카프 가장자리를 둘러싼 참전국 국기와 부대마크 그림은 6·25전쟁 당시 참전한 많은 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자유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9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이래 30년 만에 평창동계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마침 알파인스키 경기가 아리랑의 본 고장인 정선에서 열린다. 68년 전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낯선 이국 땅에서 함께 싸웠던 참전용사들의 자리가 이제는 평화와 화합을 다짐하는 세계 젊은이들로 채워졌다. 참전용사들의 유품이 되어버린 ‘아리랑 스카프’를 보며 대한민국을 위해 몸 바친 이들의 고귀한 희생과 용기를 기억해본다. 기억한다는 것은 공동체를 지키는 중요한 첫걸음이자 평화를 되새기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강현삼 전쟁기념관 유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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