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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군사 >비행학교 이야기

“시험 합격보다 중요한 건 비행을 즐기는 거야”

<37> 어려운 경험을 할수록 더 크게 성장한다
2018. 10. 11   16:23 입력

새로운 교관 다비드와의 수업이 시작됐고, 나는 다시 한번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됐다.  필자 제공



교관 밥 최종 시험 일정 차일피일 미뤄
허심탄회하게 불만 얘기하고 교관 교체
새 교관 다비드 “웃으며 비행해” 조언
새롭게 각오 다지며 행복한 비행 교육
첫 수업 마치자마자 FAA 시험 잡아줘


남은 비행 평가를 위해 스케줄 배정을 기다리다, 교관인 로니가 직접 평가하기로 결정됐다. 로니는 내가 처음 학교에 올 때부터 허물없이 대해줬던 학교의 대장 교관(Chief Instructor)이었다. 그리고 비행만이 아닌 FAA 시험과 동일하게 3차 평가를 다시 보기로 했다.

형식적인 테스트가 아닌, 최종 점검을 위한 테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선 마커스와의 구술 평가, 제니퍼와의 이착륙 평가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됐기에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로니와의 평가가 시작됐다. 머릿속에는 잘 봐야겠다는 생각 반 그리고 실력대로 차분하게 보자는 생각이 반이었다. 구술 평가에 합격했다.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비행하기에도 아주 좋은 날씨였다. 시험 날 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2시간이 안 되게 비행을 하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와서 로니와 마주 앉아 디브리핑을 했다. 합격이었다. 길게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해냈다. 내 교관인 밥과 마무리만 잘하면 이제 진짜 시험을 보는 것이다. 끝에 와 가는 게 느껴졌다.

교관 밥과의 수업을 마쳤다. 보강할 것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디브리핑을 끝마칠 때쯤, 교관은 FAA 새로운 영어 규정이 생겼다며, 나에게 영어 평가를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배려한 듯 물어봤지만, 내가 느끼는 바는 그렇지 않았다. 충격적이었다. 당장 시험을 앞둔 나에게 새로운 규정을 이야기하며 내 실력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규정대로 테스트를 보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교관은 말하기 능력, 듣기 능력, 발음, 이해 능력, 요약 능력 등을 즉시 테스트했다. 나는 그가 원하는 것들을 답변했고, 그는 문제없다며 넘어갔다. 실력으로 교관을 더 만족시켜 주리라.

모든 테스트를 마쳤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도 시험(checkride)을 잡아주지 않았다. 교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며, 학생 실력이 안 됐을 때 시험을 안 잡아주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단순히 영어나 비행기술 문제 때문에 시험 날짜를 안 잡아주는 것 같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수업시간마다 그와 감정적으로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여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교관 밥과 수업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여버린 안 좋은 감정들이 점점 더 깊어졌다. 남자 대 남자로 정확하지 않은 그것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교관이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해도 친구가 아니었기에 속 시원히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내 실력을 탓했기에 나는 그것을 보완하려고만 애썼다.

그런데 그게 두 달이 넘어가면서, 실력을 아무리 보완해 나가고 최종 테스트까지 합격했지만 칭찬은커녕 끝없이 문제점을 공격적으로 거론했다. 내가 느끼기엔 말이다.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원래 교관들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서 마지막에 더 집요하게 훈련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교관과 인간적으로 소통이 되는 선배들은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수업하는 모습이나 분위기를 보면 공기가 얼어붙은 것과 같다고 표현해주는 선배들도 있었다. 히바 감독님 또한 처음 교관과 수업했을 때의 그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다. 분명히 교관이 나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맘에 들지 않았던 게 있었음이 분명했다.

사실 나는 지금 가장 염려되고 있는 부분이 교관과의 관계나 시험이 빨리 결정되지 않은 것 자체가 아니었다. 나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비행을 하고 있었으나, 비행 말고도 이 모든 과정을 영화로 찍고 있었고, 영화 제작 지원을 받았던 스폰서 회사들에 했던 약속도 있었다. 그건 바로 라이선스 취득 후 미국 비행 일주 프로젝트였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히바 감독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걸려도 나는 한 단계씩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는데, 매일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영화에 비행 라이선스를 따는 순간이 못 나와도 괜찮다. 50개 주를 못 해도 괜찮다. 나중에 하면 된다. 그것은 내가 아직 실력이 안 돼서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 교관과의 인간적인 감정이 걸림돌이 된다면, 더불어 그걸 해결할 노력조차 못 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나는 비행하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내가 15년간 꿈꿔왔던 파일럿인데, 어떻게 이렇게 즐겁지 않을 수가 있을까.

수업을 마치고 밥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밥과 나는 얼굴이 굳은 채로 항상 수업을 하고 있었고, 수업 외에는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긴장감을 넘어 냉랭함이 늘 흘렀다. 밥은 흔쾌히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나는 교관에게 느꼈던 납득이 안 됐던 부분들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놀랍게도 솔직하게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속이 시원했다. 왜 진작에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것일까. 무엇이 어려웠던 것이었을 까. 밥과 나는 정말 오랜만에 굳은 얼굴을 펴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니 결정들을 빨리 내릴 수 있었다. 나는 밥에게 마지막 남은 시간은 다른 교관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는 내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밥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학교에서 가장 나를 믿어주는 윌에게 나의 상황에 대해 조언을 구했었다. 윌은 우리 학교 대표이자 파일럿으로서 대선배님이시기도 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순간에 교관을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줬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학교에서 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현재 교관이기 때문에, 만약 새로운 교관으로 바뀌면 모두 다시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선배이자 또 친구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그의 조언은 이해가 됐지만, 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였다. 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좋은 판단이 무엇일지 결정해야만 했다. 하루 이틀 고민한 게 아니라 두 달이 넘는 동안 내 안에서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최종 결정을 했다. 교관을 바꾸자.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다. 밥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다. 밥에게 내 결정을 말했다. 밥과 솔직하게 이야기한 이후로, 밥은 진심으로 응원해주며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 학교 평가 교관 중 한 명인 다비드를 찾아갔다. 마지막 비행 수업을 다비드와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와는 몇 번 수업했던 경험이 있었다. 다비드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 대장 교관인 로니와 이야기를 나눈 뒤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곧바로 비행과 수업을 했고, 그는 나에게 한마디 했다. “동진, 즐겁게 비행하지 않으면, 비행하지 않겠다.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게 비행 때마다 행복하게 해야 하는 거야.” 충격적이었다. 절차를 더 정확하게 하라는 게 아니라 비행은 즐거운 것이니 웃으면서 하라고 이야기해줬다. 바로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도 그가 얼마나 비행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내 비행학교 생활 중 최고의 시기를 맞이했다. 비행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와의 첫 비행 수업을 마치자마자 FAA 시험(checkride)을 바로 잡았다. 교관을 바꾼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이동진 파일럿·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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