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파일럿에게 하늘은… “
3시간 비행거리 피닉스 다녀오자
”종민 형·순재 제안에 흔쾌히 승낙
비행 중 갑자기 폭우 항로 급수정
이름 모를 마을서 하루 묵고 출발
이번엔 거대한 구름 덩어리 속으로
날개에 결빙 생겨 추락 위기 직면
피닉스로 장거리 비행을 떠나다
비행 면허를 가진 종민 형과 순재는 크로스컨트리, 즉 장거리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면허를 취득한 모든 조종사는 미국 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비행할 수 있기에 둘은 학교에서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걸리는 애리조나 피닉스에 가기로 했고, 나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하루 총 6시간 정도 걸리는 일정이었다. 장거리 비행은 단거리 비행에서는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울 수 있어 나는 기꺼이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는 피닉스라는 대도시와 근처의 작은 도시에 내렸다가 돌아오기로 했다. 애리조나는 내가 사는 샌디에이고와 달리 사막이기에 매우 무덥고 건조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 기후 조건 속에서는 비행기가 잘 날지도 궁금했다. 왜냐하면, 경비행기의 경우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출발하는 날은 날씨가 상당히 좋았고, 저녁 시간에는 구름이 조금 있는 정도였다. 두 명의 든든한 선배와 비행하기에 너무나도 편했다. 샌디에이고 상공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피닉스까지 거의 모든 지역이 사막이었다. 작은 마을 정도가 있을 뿐, 대도시도 없었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 도시를 잇는 유일한 한 개의 고속도로였다. 이륙하고 십여 분 바쁜 교신을 주고받은 뒤부터는 거의 교신을 주고받지 않았다. 유일하게 하는 교신은 그 경계를 넘을 때마다 주파수를 바꿔서 새로운 관제센터에 연결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비행기는 하늘에 혼자 떠 있지만, 교신을 통해 항상 보호받으며 비행할 수 있기에 안전하다. 이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비행하면서 알게 됐다.
언제 도착할까. 2시간30분 정도 지나자 피닉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착륙 전에 교신 주파수를 공항 관제센터로 바꿔서 그들의 통제에 따른다. 우리는 피닉스 디어밸리 공항 관제사의 착륙 지시를 받고 착륙을 준비했다. 공항에는 비행기가 엄청나게 많았다. 기름을 넣고 우리는 공항 내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해가 어느새 지평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두 번째 목적지인 러브 공항으로 이동했다. 40분 정도 걸리는 비행이었다. 산 위를 날다가 갑자기 나타난 소도시의 야경이 무아지경을 느끼게 해줄 만큼 아름다웠다. 이번에는 비행기가 착륙한 뒤 다시 비행기를 돌려 곧바로 이륙했다. 우리는 샌디에이고로 기수를 향했다.
사막의 저녁은 낮보다 더 고요했다. 별빛이 수놓은 하늘과 아무 빛도 없는 사막 사이를 날고 있을 때는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우주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행은 매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지구의 구석구석 모든 하늘을 다 날아보고 싶다는 꿈이 더 강렬해진 것도 비행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다
“동진아, 비 온다.” 헤드셋 너머로 앞에 있던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창밖을 봤다.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오진 않을 거야.’ 우리는 비행하기 전 지나가는 항로의 날씨를 항상 확인하기 때문에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항로를 수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오는 것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시야마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관제센터에 연락했고 근처 공항으로 바로 착륙 요청을 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항로 수정을 위해 근처 공항을 확인하고, 내비게이터를 보며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과 가까워졌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공항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계기 착륙을 할지, 시계 착륙을 할지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계기 착륙을 위해서는 공항 멀리서부터 준비해서 착륙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남은 기름을 따져보니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비행기가 비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렸다. 최대한 빨리 행동해야 했다. 우리는 눈으로 직접 보고 활주로를 찾아내 착륙한다고 보고하고 공항으로 더 가까이 진입했다. 그때였다. 거친 빗줄기 사이로 활주로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환호하며 차분히 활주로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중에도 비행기는 안정적으로 착륙했고, 주기 장소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조종사들이 쉴 수 있는 라운지로 향했다. 우리는 대책회의를 했다. 이 날씨에는 절대로 비행기가 뜰 수 없었다. 아직 샌디에이고까지 한 시간도 넘게 남은 상태였다.
“우리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가자.” 가장 선배인 종민 형이 얘기했다. “그렇게 하자. 형.” 순재와 나도 동의했다. 갑작스럽게 날씨로 인해 우리는 하루를 이름 모를 마을에서 묵게 됐다. 비행기를 세워두고 근처 가까운 숙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신기하게도 숙소에 도착하니 비가 멈췄다. 이미 밤 9시를 넘은 시간이었고, 간단히 먹을 것을 사서 먹고 다음 날 떠날 준비를 했다.
두 번째 시련이 찾아오다
아침이 밝았다. 하늘에 구름이 엄청나게 많이 끼어 있었고, 오늘 비행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를 점검해 보니 이 지역뿐만 아니라 샌디에이고까지 우리가 비행하는 높이까지 구름이 있는 상태였다. 구름이 있다고 비행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비행하기 위해서는 맑은 날씨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 지역의 날씨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걸 확인하고 우리는 결정해야 했다. “지금 갈 수는 있지만 조금 있으면 못 가. 결정하자.” 일단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셋은 이륙하기로 결정했다. 공항 바로 위는 상대적으로 구름이 없었기에 시계 비행으로 이륙했다. 하늘에 올라가니 땅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더 거대한 구름 덩어리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내가 비행훈련을 하면서 봤던 가장 위협적인 광경이었다. 물론 구름이라고 다 똑같은 구름이 아니다. 또한, 안 좋은 날씨에 대비해 계기만 보면서 비행하는 계기 비행을 하기 때문에 조종사들에게는 구름 속 비행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앞으로 내가 숱하게 겪게 될 상황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늘 위에서 관제센터에 계기 비행 요청을 보냈다. 그렇게 되면 관제센터는 우리에게 계기 비행 허가를 내주면서 앞으로 우리가 가는 항로와 고도를 결정해준다. 그럼 구름 속이라도 지시대로만 따라가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0층 빌딩보다 더 높아 보이는 거대한 구름 속으로 우리는 비행기를 끌고 들어갔다. 이제 사방은 구름뿐이었다. 지시를 따라서 우리는 항로를 이동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비행기 날개 위로 얼음이 생기는 게 아닌가! “형!! 날개에 얼음이 생겼어!!”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날개가 얼어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빠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사진=필자 제공
<이동진 파일럿/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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