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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 vs 노력… 같은 시대를 산 ‘숙명의 라이벌’

입력 2017. 07. 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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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 넘나들기<3> 테슬라와 에디슨의 인연과 악연


테슬라

1856년 크로아티아서 태어나

과학자로서 직관·이론 중시

 

직류 송전방식 에디슨 진영 제치고

오늘날 ‘교류송전’ 확립에 큰 공헌

전기자동차 ‘테슬라 모터스’ 주인공

 

에디슨

“천재란 99% 노력…”이 말하듯

끈질긴 노력과 실험정신 추구

 

사업가적인 안목과 수완도 갖춰

타인 발명품까지 실용화 사례 많아

테슬라와 노벨 물리학상 같이 탈 뻔

 

실험실 내 고전압 테슬라 코일 변압기 앞에서 『자연 철학 이론』을 보고 있는 니콜라 테슬라. 원 안은 34세 때의 니콜라 테슬라.  위키피디아

 

 



상품 이름에 발명가나 과학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더욱이 남이 붙여주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전기자동차로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테슬라 모터스’의 테슬라는 어디서 온 말일까. 자기력 선속 밀도(magnetic flux density) 단위인 ‘테슬라’는? 최근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를 만나보자.


고전압 방전을 일으키는 테슬라 코일, 실용화되기 시작한 무선 전력 송신 방법 등이 최근 빛을 발하고 있다. 니콜라 테슬라의 선구적 발명품과 업적들이 뒤늦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업적이라는 것들이 너무 부풀려진 것들이라는 주장도 없지는 않지만, 에디슨과 비교해 볼 때 그의 업적과 과학자적 정신은 매우 흥미롭다.

테슬라는 시대를 앞선 천재 과학자, 또는 몽상가적 기질의 괴짜 과학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의 경쟁자로도 잘 알려져 왔다. 즉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 직류 송전 방식을 끝까지 고집한 에디슨 진영을 제치고, 오늘날과 같은 교류 송전 방식의 확립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테슬라와 에디슨은 역사적 라이벌일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인연과 악연이 얽혀있기도 한데, 두 사람을 비교해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 7월 크로아티아 리카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발명과 기술에 흥미를 보였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등 엘리트 과학도의 길을 걸었으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부다페스트 등지에서 전신국 직원, 전기기사 등을 전전하다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다.

테슬라는 한때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테슬라의 획기적인 발명품에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던 에디슨이 농담으로 치부하고 약속을 어기면서 두 사람의 ‘악연’은 시작되었던 듯하다.

에디슨과 테슬라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발명가로서 며칠씩 밤을 새우면서 발명에 몰두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는 점은 같았지만, 발명에 임하는 방식은 좀 달랐던 듯하다. 에디슨은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의 결과’라는 유명한 말에서 잘 나타나듯, 발명의 과정에서도 무수한 시행착오(trial & error)를 불사하는 끈질긴 노력과 실험 정신을 중시하였다. 반면 테슬라는 과학자로서 직관과 이론적인 측면을 보다 중시하여, 무턱대고 실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뻔했다는 얘기도 후세 사람들에 의해 많이 회자되곤 하는데, 정확한 진상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이 엇갈리고 있다.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191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에디슨과 테슬라가 공동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낸 바 있으나, 정작 그해 노벨 물리학상은 X선 결정학에서 업적을 남긴 브래그(Bragg) 부자(父子)에게 돌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자로서 자존심이 강했던 테슬라가 발명가에 불과한 에디슨과 공동으로 상을 받을 수 없어서 수상을 거부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작 노벨상 공동 수상을 거부한 것은 에디슨이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던 테슬라가 노벨상 상금을 받지 못하도록 잔인한 술수를 부렸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에디슨은 발명가로서 뛰어난 능력 못지않게, 자신이나 타인의 발명품을 실용화하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도 매우 탁월한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

그의 대표적 발명품으로 꼽히는 전구 역시 그러한 경우 중 하나다. 즉 선행 발명가들이 발명 자체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몇 가지 결점이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들, 혹은 실용화에 진척이 없어서 일반 사람들이 널리 쓰기에는 어려운 상태에서 에디슨은 그런 문제들을 해소하고 결국 대중화와 상업화에도 성공한 적이 많았다. 물론 이 역시 에디슨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가 발명가로서의 능력과 자질뿐 아니라 사업가적인 안목과 수완도 나름대로 갖췄던 측면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테슬라는 이런 측면에서도 에디슨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는 에디슨과의 송전 사업 경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부를 누리지는 못했고, 도리어 재정적으로 쪼들릴 때가 더 많았다.

수많은 발명과 특허를 보유했지만 돈벌이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과학자로서 이상주의적 자세와 ‘선비정신’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테슬라 모터스의 일론 머스크 회장이 몇 년 전 자사 보유의 전기자동차 관련 특허를 모두 무료로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는데, 테슬라의 이름뿐 아니라 그의 숭고한 ‘카피레프트(Copyleft)’적인 사고마저 계승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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