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톰 클랜시의 엔드워
유닛 중심 카메라 워크·음성명령 체계
실전 지휘소 현장 느낌 살리는 데 주력
제한된 카메라와 음성 지휘로 만들어낸 현대전의 전술지휘
2008년 출시된 전략 게임 '톰 클랜시의 엔드워(Tom Clancy's EndWar)'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독특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미국·유럽·러시아가 벌이는 가상의 제3차 세계대전을 다룬 게임인 '엔드워'에서는 게임 플레이가 공중 시점이 아닌 각 전투 유닛들의 바로 뒤에서 비추는 카메라를 통해 이뤄진다.
반드시 플레이어가 통제하고 있는 유닛의 시점으로만 전장을 바라봐야 하므로 어떤 면에서는 전체 국면을 볼 방법이 없어 갑갑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갑갑함은 한편으로는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현장의 카메라를 통해 전황을 살피고 실시간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영상과 통신 기술이 발전한 최근의 현대전이 전술 국면을 다루는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전의 전술지휘를 표현하기 위해 '엔드워'가 도입한 또 하나의 방식은 바로 음성 지휘 시스템이다. 마우스나 패드를 움직이지 않아도 마이크만 있다면 음성 명령을 통해 각 부대에 명령할 수 있다. 물론 영어로만 진행할 수 있으므로 아주 편한 방식은 아니지만, 사용되는 명령이 "Attack hostile 1" "Team 1 move to Bravo"와 같이 군사용어에 한정돼 있어 못 할 수준은 아니다.
현장 카메라 중심의 화면과 마이크를 통한 음성 명령이 엮이면서 '엔드워'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서도 굉장히 독보적인 지휘체계 연출을 표현하게 됐다. 마치 지휘통제실에 앉아 여러 부대가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상황을 파악하면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부터 근미래까지 예상되는 전술지휘체계의 발전이 가리키는 바로 그 지휘소의 현장을 게이머에게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 '엔드워'의 목표였다.
제3차 세계대전을 전술지휘소 관점에서 그려낸 수작
지휘소 현장을 통해 '엔드워'가 그려낸 전장은 전장 자체에 머물지 않고 미래 세계에 대한 서사로 이어진다. 세상에서 맥락 없는 전쟁은 없기 때문에 게임 또한 맥락 없이는 현실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엔드워'는 그 맥락으로 핵전쟁의 위기가 사라진 세계에서 새롭게 벌어지는 제3차 세계대전을 다룬다. 핵전쟁이라는 대위협이 통합 미사일방어망으로 제거된 상황이지만, 석유 자원의 부재로 인한 정세 불안은 또다시 전쟁의 위기를 불렀다.
게임 속에서 미국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핵전쟁 위기가 종식되면서 항구적 평화를 선언했었지만, 항구적 평화는 곧 패권국으로서의 권위가 사라지는 세계임을 의미했다. 중동 위기로 인한 유가 불안이 닥치자 미국은 다시 한번 세계 최강국임을 증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이를 위해 기존의 기동타격군 체계를 우주정거장으로 옮겼다.
우주 궤도 상에 위치한 미 해병대 3개 중대 병력은 세계 어디든 90분 내 강습이 가능한 새로운 타격군이었다. 이 계획의 완성이 미사일 방어 이후 구축된 힘의 균형을 깬다고 판단한 유럽연방(EF)과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갈등 속에서 우주정거장의 마지막 모듈의 발사가 정체 모를 집단의 테러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면서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빨려든다.
현실적인 고증에 기반을 둔 미래 예측
이러한 시나리오는 꽤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막무가내 상상이 아니라 진행 중인 전략 발전을 기초로 그려낸 미래 상상이기 때문이다. 우주정거장에서 바로 현장에 강습하는 미 해병대의 모습은 현재 미군이 주도하는 신속전개 중심의 편제를 미래 상황으로 그려낸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개발한 미사일 방어체계 또한 한국에서도 최근 논란이 된 종말단계고고도지역방어체계(THAAD)의 발전형에 가깝다. 2008년에 출시된 게임임을 고려하면 세계 군사력의 미래발전전략 면에서는 상당히 근접한 예측을 해낸 셈이다.
현실적인 고증에 기반을 둔 미래 예측과 이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를 전술지휘소 현장의 느낌을 살린 카메라 워크와 음성인식 명령체계로 그려낸 '엔드워'는 출시 당시 크게 흥행하지 못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출시 후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이제는 일상이 된 음성인식 기능이나 10년 전에 예측한 미래 군사력의 양상이 현실에서 꽤 비슷하게 흘러가는 모습 등에서 분명 놀랄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게임이 아닐 수 없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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