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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윤리적 무기… 다수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입력 2016. 10. 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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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람보 만드는 약·적 무력화 가스’…추방에 글로벌 공조


신경과학 진보·비대칭 전투 확산에 ‘의약품 무기화’ 관심

윤리적 논란·부작용 많아 생물·독성무기협약으로 금지

러, 인질 구출에 수면가스 분사로 130여 명 사망하기도

내달 초 BTWC 8차 회의 핵심주제…사찰 권리 논의할 듯

 

 

 

 

세계 각 정부는 생물독성무기협약(BTWC),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도 불구하고 ‘전투 약물’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윤리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방독면을 소지한 이라크군이 IS의 핵심 거점인 모술 공격에 앞서 장비 점검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두려움, 피로감, 죄책감 없이 적군을 향해 초인과 같은 영웅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투철한 국가관과 전우애, 충성심이 이를 가능하게 하지만, 민간인과 적군이 함께 뒤섞이는 ‘비대칭 전투’에서는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거두기가 더더욱 어렵다. 치열한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전쟁 후유증이다. 때론 적들에게 환각을 통해 가공할 만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전투를 치르지 않고 스스로 항복하게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일부 국가들은 ‘약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아프리카 소년병에 마약 지급도


아프리카 내전에선 후진국들은 소년병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마약을 지급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집으로 가는 길(Long Way Gone)’에서 저자인 이스마엘 베아는 전투에 앞서 람보 영화를 보면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심지어 코카인과 화약을 섞어 흡입했다고 1990년대 당시 시에라리온 내전 상황을 회고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특히 2001년 9·11 이후, 내전·테러공격 등 적군과 아군 및 민간인이 뒤섞이는 ‘비대칭 전투’의 비중이 높아지자 선진국들은 ‘비(非)치명적(Non-lethal)’ 전투 신약 개발에 관심을 쏟았다. 컴퓨터 모델을 이용한 신경과학의 발달로 분자 단위의 바이오 조작이 가능해지고, 인간 두뇌지도 또한 속도를 내면서 실제 전투에서 사망자 없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투 신약’ 개발이 비밀리에 진행돼왔다.

 

선진국 ‘전투 신약’ 개발 비밀리 진행

 

 

실제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는 지난 40년간 포이즌아이비(덩굴 옻나무), 두꺼비 독 등을 이용해 환각, 인간 호르몬 조작, 고통 유발 물질, 생리적 자극 물질 등을 개발해온 사실이 뉴욕타임스에 폭로돼 충격을 던진 적이 있다.

이에 영국의학협회는 생물독성무기협약(BTWC),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의약품을 무기로 만드는 데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인질테러 사건 등 비대칭 전투에서 비치명적 약제를 살포해 전투의욕 상실, 환각, 최면상태 등을 유도해 인질을 구출하고 적군을 사살하는 ‘신무기’에 거는 기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전투 약물’ 개발은 즉각 윤리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영국의학협회에 따르면, 실전에서 사망 위험 없이 적군을 무력화할 수 있는 약물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당분간 있을 것 같지도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지난 2002년 10월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총 912명의 인질 가운데 130여 명이 사망하는 인질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러시아 보안 당국이 전신마취제의 변종으로 알려진 수면가스를 분사해 사망자가 급증한 것으로 밝혀졌다. 군 전문가들은 만약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해 인질구출작전을 실행했다면 인질 16명 가운데 평균 1명 정도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가스 형태의 ‘신경무기’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알레르기성 반응, 호흡곤란을 가져올 수 있고 노약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치명적이란 수식어 때문에 현장 지휘관들이 그 효과는 과장하고,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낮춰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함께, 실제 전투에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생각으로 비치명적 신경무기를 과도하게 살포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신경무기’ 개발 사실상 방치 상황


이 같은 이유에서 BTWC, CWC 등 국제조약은 두뇌와 중추신경계를 목표로 하는 신경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민간기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군·민 양용(dual-use) 기술’로도 불리는 전투용 신경무기들은 다음 달 초에 열리는 BTWC 8차 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생물·독성 무기의 개발, 생산, 축적, 습득을 금지하는 BTWC는 지난 1975년 3월 26일에 공식 발효됐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173개의 회원국을 두고 있다. 원래는 탄저균 등 생물학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마련됐지만 신경과학의 진보에 따라 전투 약물 등을 ‘독성무기’로 규정하고 이를 협약에 포함하는 등 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BTWC는 세계원자력기구(IAEA), CWC 등과 같이 강력한 사찰권한이 없어 각국의 신경무기 개발이 사실상 방치되는 상황이다. 매사추세츠대 니콜라스 에반스, 조너선 모레노 교수는 이 같은 한계 때문에 “각국 정부가 수십 년 내에 ‘무력화 신경무기’에 관심을 쏟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면서 “특히 일부 독재국가들이 반대시위 등을 진압하기 위해 신경무기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연구 투명성·사찰 역량 키워야”

 

 

BTWC 회원국들은 다음 달 7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8차 리뷰 콘퍼런스를 한다. 이들은 지난 1980년 제네바에 1차 리뷰 콘퍼런스를 연 이후 5년마다 회의를 개최해왔으며 이번이 8번째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7년 6월 25일 비준국으로 대표단을 회의에 파견하고 있다.

에반스 교수 등은 이번 BTWC 회의에서 “각국이 인지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를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보다 강화하고, 특히 약리학, 인지과학, 미생물학, 신경과학 등 연구에 대한 사찰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태형 뉴스1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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