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투근무지원정과 함께한 항만방호훈련
“오늘 만나볼 함정들은 맹 기자님이 지금까지 타보신 것보다 조금은 작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해군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들이죠. ‘군항의 살림꾼’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근무지원정들을 소개합니다.”
지난 18일 해군3함대사령부로 가는 길. 목포역 앞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던 차재석 중령(진)은 오늘의 취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그동안 타온 군함들은 신형 호위함(FFG)이나 이지스 구축함(DDG)처럼 큰 함정들이었다. 그동안 거센 풍랑 속에서 뱃멀미에 시달렸던지라 이번엔 과연 멀쩡한 걸음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한번 타보죠!” 호기롭게 대답하고 차 중령(진)과 함께 3함대로 향했다.
군수지원정, 도서지역 물자공급 책임진다
전투 근무지원정이란?
차 중령(진)과 함께 도착한 곳은 3함대 3기지전대 본부. 최돈림(소령) 전대 정작참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안과 기지를 방어하는 3기지전대의 전반적인 임무에 대해 소개받은 뒤 곧바로 취재를 위해 부두로 향하는 길. 차 중령(진)에게 우선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했다.
맹수열 (이하 맹) : 전투근무지원정은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하나요?
차재석 중령(진) (이하 차) : 사실 조금 생소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군함이라고 하면 최첨단 무기체계를 갖춘 크고 멋진 군함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중·대형 함정들은 도서나 연안 가까이에서 작전을 하기 어렵습니다. 또 항만 내에서의 기동도 자유롭지 못하고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전투근무지원정입니다. 현재 해군이 운용하고 있는 전투근무지원정의 종류는 30여 가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항만을 경비하고 주변에 침투하는 적들을 격퇴하는 항만경비정(HP)입니다. 그 외에도 도서지역에 물자를 공급하는 군수지원정(LCU), 항만 주변을 정화하는 청소정(OS), 군함의 출·입항을 도와주는 예인정(YTL)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예전부터 들던 궁금증이 다시 떠올랐다. ‘함’과 ‘정’. 그 구분은 무엇일까? 차 중령에게 물었다.
차 : 함정은 함과 정의 합성어입니다. 둘 다 배를 지칭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죠. 수상함정과 잠수함정이 약간 다르긴 합니다. 우선 수상함정은 만재톤수 500톤을 기준으로 그 이상을 수상함으로 그 이하를 수상정으로 부릅니다. 잠수함의 경우는 만재톤수의 기준이 150톤입니다. 수상함정은 영관급 장교가 지휘를 하느냐, 위관급 장교가 지휘를 하느냐에 따라 구분하기도 합니다. 영관급이 지휘하면 함으로, 위관급이 지휘하면 정으로 부르는 것이죠. 잘 아시는 참수리 고속‘정’은 만재톤수가 150톤 정도이고 대위급이 지휘하고 있죠. 지난번에 함께 탄 경기함(FFG)의 함장은 중령이었죠? 만재톤수도 2500톤급이고요. 그래서 신형 호위‘함’인 것이죠.
항만경비정, 군항을 지킨다
종류도 30여 가지…다양한 임무 막힘없이 수행
이야기를 듣는 사이 전투근무지원정이 정박해 있는 부두 앞에 도착했다. 이날은 3함대가 매주 실시하고 있는 항만방호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모항을 노리고 적 특수전부대가 침투한 상황을 가정하고 해상과 육상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기자는 항만경비정, 고속단정(RIB) 등과 함께 바다로 나갔다. 오전에 내린 비의 여파로 항만을 감싸고 있는 뿌연 안개를 헤치며 항만경비정과 고속단정이 물살을 갈랐다.
부두를 나서던 중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함정 위에서 잠수복을 입은 특수전요원(SSU)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맹 : 특수전요원들이 타고 있는 배도 전투근무지원정인가요?
차 : 그렇습니다. 바로 잠수지원정(DB)입니다. 함정이 나갈 때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그물 등이 있을 수 있죠? 그런 것들은 잠수요원들이 치워줘야 합니다. 그럴 때 주로 잠수지원정을 타고 나가게 되죠. 잠수요원들의 원활한 임무수행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잠수지원정입니다.
조금 더 바다로 나가자 이번에는 뿌연 물안개를 내뿜고 있는 배가 보였다. 과연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맹 : 저 배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차 : 조금 전에 설명해 드렸던 청소정입니다. 해양오염을 예방하고 오염된 바다를 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해상에 버려진 쓰레기나 부유물을 수거하는 것은 물론 해상에 떠다니는 기름을 유처리기를 이용해 걷어 올리기도 합니다. 청소정 주변에 주황색 튜브가 설치되고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오일펜스라고 하는데요. 기름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청소정은 정기적인 해양오염 방제활동은 물론 적은 양의 기름이라도 유출되면 즉시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경비함정들처럼 엄정한 긴급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죠. 지금 물을 뿜고 있는 것은 화재 진압을 위한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잠수지원정, 잠수요원 임무를 돕는다
모항(母港)을 지키는 항만경비정
각종 전투근무지원정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이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과연 작은 항만경비정으로 완벽한 격퇴가 가능할까? 이번에는 동승한 최 소령이 답했다.
최돈림 소령(이하 최) : 항만경비정은 적재톤수 50톤 정도로 해군 함정 중에서도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큰 함정들은 홋줄을 걷고 출항하는 시간 자체가 상당히 오래 걸립니다. 당장 항만 앞에 적 함정이 들어오고 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죠. 반면 출항할 때 보셨겠지만 항만경비정은 금방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바다로 나설 수 있습니다. 즉응성 측면에서는 훨씬 유용하단 얘기죠. 그리고 기동성 측면에서도 이점을 갖고 있죠. 과거에 쓰던 항만경비정(YUB)은 스크루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워터제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순간 가속도도 크게 늘었습니다. 공간의 제한 없이 연안에 들어오는 적 함정을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죠. 물론 연안에 접근하는 적 함정 역시 그리 크지는 않기 때문에 이를 격퇴할 수 있는 충분한 무장도 갖추고 있습니다.
최 소령의 말처럼 출동한 항만경비정들은 침투하는 적 함정을 신속히 포위했다. 출항부터 탐지·식별·격퇴까지 걸린 시간은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작지만 강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청소정, 해상 쓰레기 꼼짝마
3함대, 철통 같은 항만방호 위해 매주 훈련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취재 전의 뱃멀미 걱정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주변을 감싸며 오히려 상쾌함을 느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맹: 3함대는 매주 항만방호훈련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왜 이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인가요?
최 : 지난해 벌어진 프랑스 테러는 항만·공항 등 중요시설에 대한 완벽한 방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군 시설도 테러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특히 함대가 위치한 군항은 유사시 모항으로서 기능이 마비되면 즉시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함정이라도 안전한 모항이 없으면 결국 탄약, 유류 등 보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로운 존재가 되죠. 항만은 함정의 임무를 보장해주는 중요한 시설입니다. 항만은 해군으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존재죠. 3함대를 비롯해 모든 함대사령부가 철통 같은 항만 방호를 위해 훈련에 매진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최 소령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기자에게 차 중령(진)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차: 오늘 취재로 전투근무지원정과 항만방호훈련에 대해 깊이 아실 수 있었나요? 최 소령이 말한 것처럼 아무리 최신의 무장을 갖춘 전투함이라고 해도 전투근무지원정이 없다면 입·출항 자체가 어렵습니다. 영화 속 화려한 주인공도 헌신적인 조연이 없다면 빛을 발할 수 없죠. 전투근무지원정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적인 희생은 그 어떤 보석보다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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