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짜 김일성의 정체(상)
14세 때 부모 따라 만주로 이사1
9세 때 중국 공산당 입당
이후 소련으로 도망 장교로 변신
조만식에게 거부당한 소련군에
33세 때 통치자로 대신 낙점돼
6·25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66년! 북한은 여전히 ‘핵전쟁’ 운운하며 대남 비방과 협박을 자행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유형의 도발을 획책하고 대남 선전선동에 열을 올리며 첨예한 대치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유사시 누가 이 나라를 지킬 것인가? 국민과 장병, 특히 전후 세대에게 6·25전쟁이 주는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이 전쟁의 실체를 새롭게 조명하는 특별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남침의 주모자 김일성(金日成)이 가짜라는 사실은 온 세상이 알고 있다.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사용한 이름은 김성주(金聖柱/成柱가 아님)이며, 소련에서 1945년 9월 북한에 입국할 때까지 이를 사용했다. 일본의 항복으로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은 평양을 점령(1945.8.24)한 직후, 김일성을 북한의 새로운 통치자(독재자)로 지목하고 그를 데려와 환영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때부터 김일성(金日成) 장군의 이름을 도용하기 시작했다. 즉 1945년 10월 14일 평양에서 벌어진 ‘김일성 장군 시민환영대회’ 때부터다.
김성주는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만경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김형직(金亨稷)이고 어머니는 강반석(康盤石)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김보현(金補鉉)이고 동생은 김영주(金英柱)다. 그는 14살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사 갔으며, 19살 때 중국 공산당에 들어가 처음부터 ‘싹이 노란’ 반체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군이 만주를 침공할 때인 1940년 12월 소련으로 도망했다. 소련에서는 그를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고려인(조선인)들로 구성된 88여단을 만들고 정보장교로 키웠다.
소련군은 일본 패망 일주일 전부터 북한 땅에 들어와 소비에트 공산정권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됐다. 처음 평양에 들어왔을 때는 민족지도자 조만식(曺晩植) 선생을 먼저 접촉했다. 그러나 조 선생이 신탁통치를 거부하자 그를 탄압하고 당시 소련군에 있던 김성주를 데리고 들어와 항일운동으로 명망 높던 김일성 장군으로 위장해 독재자로 세웠다.
1945년 10월 첫 모습을 드러낸 가짜 김일성
김성주는 1945년 9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원산항으로 들어왔으며, 자신의 존재가 드러날까봐 처음에는 숨어 지내다가 10월 14일 평양 시민환영대회에서 첫 모습을 드러냈고 소련군은 그를 ‘김일성(金日成)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33세로 새파랗게 젊은 그를 보고 평양 시민들은 즉석에서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바로 김성주의 외할머니였다. 김성주는 시민환영대회가 끝난 후, 자기에게 쏠린 시선이 냉랭하자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그 자신부터가 ‘가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집안의 어른인 외할머니에게 인사드리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
김일성 장군이 인사 올 것이라는 연락을 사전에 받고 기다리던 할머니는 김일성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항일 독립투쟁으로 평생을 바친 역전의 용장 김일성 장군은 연세도 지긋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장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새파랗게 젊은 외손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갔다. ‘저놈이 무슨 큰일을 저지르고 있는 모양인데, 이러다가 큰일 나겠구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편에 계속>
● 배영복 (예)육군준장은
성균관대학교 졸업/학군 3기/베트남전쟁 참전/국방부 정훈교육과장/국방부 보도과장 /육군 공보실장/ 육군정훈감/도곡 현대사연구소 대표/6·25 진실 알리기 본부 이사/대표 저서 ‘전쟁과 역사’(2014)
<배영복 전 육군정훈감>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