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청나라 연극과 마술
황제, 판첸라마 극진히 대하자 사대부들 “도술 신통” 극구 칭찬
속마음과 다른 언행에 개탄
황제 생일 땐 궁에서 연극 관람
무대는 별궁 동쪽 누각에 설치
노래 불협화음 심해 ‘무늬만 한족’
황제에게 아부하는 중국 사대부
1780년 9월 9일 저녁 늦게 숙소인 태학(太學)으로 돌아온 연암은 산둥 성의 군사령관인 학성과 술 마시며 필담을 나눴다. 열하일기의 ‘황교문답’(라마교에 관한 문답) 편에는 학성을 비롯해 태학에서 수학하고 있는 왕민호와 그의 룸메이트인 추사시, 그리고 윤가전과의 문답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연암은 이날 낮에 사절단 대표가 마지못해 판첸라마를 만났지만, 불쾌한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더구나 하인들은 판첸라마의 목을 베어버릴 태세였고, 황제에 대해서도 천하의 주인이 언행에 신중치 못하다고 투덜대는 것을 보았다.
연암은 중국 사대부들도 판첸라마에 대해 비판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모두가 판첸라마의 도술(道術)의 신통함을 극구 칭찬하면서 그를 만난 것이 큰 영광이나 되는 양 부러워하는 것 아닌가? 이를 보고 연암은 이렇게 개탄했다.
“아, 청나라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그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황제가 판첸라마를 극진히 대하는 것을 알고,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늘어놓는 것으로 보였다. 예부터 나라의 영고성쇠(榮枯盛衰: 번영과 쇠락)나 인간의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이 모두 윗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로구나!”
연극 구경
9월 9일 밤늦게까지 중국의 벗들과 필담을 나눈 연암은 9월 10일 오전 늦게 대궐로 향했다. 궐문에 가까워지자, 풍악 소리가 요란하다. 열하일기의 ‘산장잡기’(山莊雜記·피서산장에서 쓴 자잘한 글) 편에는 이날 연암이 관람한 ‘구여가송(九如歌頌)’을 비롯해 80편이나 되는 중국 연극 대본의 제목이 실렸다. 또한, 공연에 관해서도 간략히 소개됐다.
“황제의 생일인 9월 11일 전후로 사흘 동안 피서산장에서는 중국의 신하들이 황제를 위해 바친 단편 시(詩)와 장편 서사시인 부(賦)와 사(辭)를 연극으로 꾸민 공연이 펼쳐졌다. 모든 관리는 꼭두새벽에 대궐로 들어가서 황제에게 문안을 드리고, 서열대로 자리에 앉아서 연극을 구경하고 나왔다. 연극은 오전 6시 정각에 시작해서 오후 2시에 끝났다.
별궁의 동쪽 누각에 설치된 무대는 그 위에 약 10m나 되는 깃발을 세울 만큼 높았고, 관객석은 수만 명이 구경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무대는 손쉽게 설치하고 분해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나무로 궁궐 건물만큼 높은 산을 쌓았는데, 그 위에 숲을 꾸며놓고는 비단을 오려서 꽃처럼 장식하고, 큰 구슬을 달아서 과일이 매달린 것처럼 만들었다.
연극은 막(幕)이 바뀔 때마다 수백 명의 배우가 몰려나왔다. 그들은 수놓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모두 한족(漢族)의 의복과 모자다. ‘구여가송’이라는 연극은 막이 열리면 무대에 산이 생기고, 바닷물이 출렁거리며, 소나무가 우뚝 서고, 햇살이 비친다.”
연극을 관람한 후 연암은 청나라 황제가 유아독존적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을 비판하는 뼈 있는 소감을 남겼다.
“오늘 본 연극은 오랑캐의 대본에 따른 것이리라. 나는 본래 전문적인 음악 지식이 없으니, 내가 들은 노래로 그들의 도덕과 정치를 평가하기에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대체로 윗소리가 높게 홀로 극에 달해서 낮은 소리와 서로 어우러지지 않고, 너무 맑고 분명해서 탁한 아랫소리가 숨을 곳이 없었다. 나는 한족(漢族) 황실의 음악은 이렇지 않을 것을 미루어 짐작하겠노라.”
정말 두려워해야 할 마술
연암은 압록강을 건넌 뒤부터 다시 조선 땅을 밟을 때까지 청나라 고을마다 야외무대와 극장에서 연극과 마술(魔術)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특히 그가 유심히 관찰한 것은 마술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열하에서 연경으로 돌아온 후로 추정된다.
열하일기의 ‘환희기’(幻戱記: 마술 구경) 편에는 청나라 예부의 의전과장 조광련(趙光連)과 나란히 앉아서 관람했다는 사실과 그때 구경한 20여 종의 마술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술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구경 후 조광련과 나눈 대화다.
“눈으로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항상 마술쟁이에게 속는 것은 눈이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밝고 자세히 보려다가 오히려 헛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어서 연암은 장님 얘기를 꺼낸다.
“약 200년 전에 우리나라에 서경덕이란 분이 계셨는데, 길을 가다가 슬피 우는 사람을 만났답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그 사연을 털어놓더랍니다.
‘세 살 때 눈이 멀어서 4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걸을 때는 발에 의지해서 보고, 물건을 잡을 때는 손에 의지해서 보고,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귀에 의지해서 보고, 냄새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코에 의지해서 보았답니다. 다른 사람은 두 눈으로 보았지만, 제게는 손·발·코·귀가 모두 눈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걸어오다가 두 눈이 갑자기 맑아지고 눈동자가 저절로 열렸습니다. 동시에 넓고 큰 하늘과 땅, 요란하게 뒤엉킨 산과 강, 세상 만물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와서 온갖 의문으로 가슴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이제 손·발·코·귀가 뒤틀려서 제 기능을 못 하므로 혼자는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돼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그러자 서경덕 선생이 장님에게 말했답니다.
‘도로 눈을 감으시게. 그러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요.’
사람은 눈으로 밝고 올바로 본다고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오늘 마술 구경을 할 때도 마술쟁이가 눈속임해서 속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관객이 저 자신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조광련은 연암의 말에 맞장구치며 말한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밝고 맑은 눈과 진정으로 일관성 있는 소신이 있는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마술 기법은 한없이 변해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에 두려워할 마술이 있으니, 그것은 아주 간사한 자가 충성스러운 체하는 것과 기회주의자가 착하고 어진 사람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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