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열하일기로 배우는 나라사랑

양 무릎 꿇고 황제 알현… 아~ 약소국의 서러움이여

입력 2016. 10. 0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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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건륭제의 조선사절단 접견


조선사절단 대표에게 듣고 기록

새벽부터 대기…굴욕적 자세로 만나

두 번의 의례적인 질문·대답으로 끝

 

13년 후 예방한 영국사절단 대사

오른 무릎만 꿇고 직접 선물 전달

공식 접견과 연회 5시간 이어져

 

 

건륭제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영국의 매카트니 대사(1793년).  필자 제공

 

 



안타까운 30분

1780년 9월 9일 동틀 무렵, 연암 박지원은 조선사절단 대표를 따라서 대궐로 향했다. 오전 5시에 ‘피서산장’이라고 쓰인 대궐 문 앞에 도착하니 만주족 예부 상서 덕보가 대표에게 말한다.

“황제께서 내일은 당연히 뵙자는 분부를 내리시겠지만, 혹시 오늘도 부르실지 모르니 조방(朝房·아침 회의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두 조방으로 들어가자, 황제가 보낸 요리 그릇이 세 개 나왔다. 연암은 오전 6시까지 기다리다가 9월 10일에나 황제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대궐 문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가는 도중에 과일가게에 들러 배를 사서 나오는데, 맞은편 술집이 왁자지껄하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술집 다락으로 올라가니 중국인은 없고, 건달처럼 사나운 몽골계와 아랍계 사람들이 떼 지어 앉아있다.

연암은 일단 자리를 잡고, 술을 잔이 아니라 사발에 담아 오도록 해서 마셨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객기를 부린 것이다. 그러자 몽골인 하나가 다가오더니 술 석 잔을 탁자에 올려놓으며 마시라고 권한다. 연암은 사발에 남은 술 찌꺼기를 난간 밖으로 버리고는 석 잔 술을 사발에 부어 단숨에 들이켜고 계단을 내려왔다. 등 뒤를 붙잡힐 것 같은 두려움에 쫓기듯이!

숙소에 도착하니 아침 식사 준비가 안 돼서 전날 저녁에 필담을 나눈 윤가전과 기풍액을 찾아갔으나 모두 부재중이었다. 마침 왕민호를 만나 그가 지었다는 시집의 서문을 읽을 때다. 마부 창대가 오더니 오전 6시30분에 사절단 대표가 건륭제를 알현했으며, 황제의 명령에 따라 곧장 판첸라마를 만나러 갔다고 전한다. 연암은 부랴부랴 라마교 사찰로 갔다.


고희를 맞은 건륭제.  필자 제공

 

 

 


건륭제의 짧은 접견

열하일기에는 연암이 직접 보았던 대표와 판첸라마의 만남이 여러 편으로 나뉘어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열하일기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을 법한 건륭제와 사절단 대표의 만남은 대표에게 들은 내용을 기록했으며, 내용이 부실하다. 또한, 판첸라마와의 만남보다 뒤에 등장한다. 만일 연암이 이날 새벽 30분만 더 조방에 머물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절단 대표가 연암에게 들려준 건륭제와의 만남은 아래와 같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조금 있으니, 접견하겠다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네. 청나라 통역의 안내로 황제 집무실 정문 앞에 이르니, 동쪽의 작은 문에 서 있던 예부 상서 덕보와 몇 명의 벼슬아치들이 다가와 알현하는 절차를 알려주더군. 잠시 후 황제가 정문으로 나와서 문 중앙의 앞쪽에 나지막이 벽돌로 쌓은 곳에 설치된 평상 위의 누런 보료에 앉더라고.

좌우의 신하들은 모두 누런 옷을 입었더군. 그중에 서너 쌍은 칼을 찼고, 두 쌍은 누런 비단 양산을 들고 있었는데, 모두 말없이 숙연하더라고. 황제가 먼저 아랍 황태자와 몇 마디 나눈 후, 우리 공식 사절 세 명과 통역 세 명을 부르기에 모두 엉덩이를 곧추세우고 무릎을 꿇은 채 황제 앞으로 다가갔다네.

황제가 ‘국왕은 평안하신가?’라고 묻기에 내가 ‘평안하십니다’라고 대답했지. 그러자 ‘만주어를 잘하는 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우리 수석통역사 윤갑종이 ‘제가 조금 합니다’라고 만주어로 대답하니, 황제가 좌우를 돌아보며 환한 모습으로 웃더군.

황제 얼굴은 네모반듯했으며, 안색은 밝고 흰빛이었으나 약간 누런빛이 돌더라고. 수염은 반쯤 희었는데, 일흔 살 노인이 예순밖에 들어 보이지 않았고, 온화하고 부드럽기가 봄날에 화창한 기운이 풍기는 듯했다네.

잠시 후 청나라 병사 6~7명이 궁술 시범을 보였는데, 차례로 화살 하나를 쏜 다음에 꿇어앉아 고함을 치는 방법이었지. 과녁은 우리나라처럼 소가죽이었으며, 한복판에는 짐승 한 마리가 그려져 있더군.”

열하로 가서 중국 황제를 최초로 만난 것은 조선사절단에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굴욕적인 자세로 만나고, 겨우 두 번의 의례적인 질문과 대답을 나눈 것은 당시 약소국이었던 조선의 슬픈 현실을 보는 듯하다.

 


건륭제와 영국사절단의 만남(1793년). 필자 제공

 

 



영국사절단의 건륭제 예방

이와 관련, 조선사절단보다 13년 후에 청나라에 갔던 영국사절단의 사례를 보기로 하자.

영국의 사절단 파견은 건륭제 생일 축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에 매우 불리한 무역 불균형 해소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이 목적이었다. 사절단은 매카트니 대사와 스턴톤 공사를 비롯해 총 95명이었으며, 외교관·철학자·의사·과학자·화가·요리사·측정도구 제작자·공연단 그리고 50명의 군인도 포함됐다.

군함 라이언호 등 3척의 선박에 나눠 탄 사절단은 1792년 9월 25일 오전 11시, 영국 남해안의 스피트헤드를 출발했다. 천문기구·지구본·의료기기 등 선물을 듬뿍 실었으며, 위기에 대비해 무장도 단단히 했다! 일행은 이듬해인 1793년 9월 14일 새벽 6시 열하에서 건륭제를 만나고, 스피트헤드를 출발한 지 만 2년 후인 1794년 9월 3일 오후 5시 스피트헤드로 귀향했는데, 여행 중에 3명이 사망했다.

매카트니는 건륭제를 만날 때, 오른쪽 무릎만을 꿇은 자세로 영국 왕을 대신해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황금 상자를 직접 전달했다. 건륭제는 답례로 영국 왕에게 희귀 보석인 흰색 옥수(玉髓)를, 대사와 공사에게는 비취를 선물했다. 이어 매카트니는 건륭제에게 한 쌍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에나멜 시계를, 스턴톤은 손잡이가 상아로 된 두 자루의 공기총을 각각 증정했다.

이날 건륭제는 미얀마와 몽골 등 9개국에서 파견된 사절단 대표들도 함께 만났으나, 영국사절단을 가장 환대했다. 선물 교환 후 건륭제는 매카트니를 불러 담소했으며, 심지어 중국어가 가능한 스턴톤 공사의 12살배기 아들을 가까이 오게 해서 얘기를 나눴다. 건륭제는 이날 연회도 베풀었는데, 공식 접견과 연회는 5시간이나 지속됐다.

매카트니는 조선사절단처럼 83세인 건륭제가 60세 노인 못지않게 건강하고, 성품이 온화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건륭제의 환대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그는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은 물론, 양국 간 무역관계 해소를 위한 조치도 단호히 거부했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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