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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문화산책] 입을 옷이 없다는 당신에게

입력 2016. 02. 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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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분야 전문가로 살아가면서 많은 이들을 만난다. 누군가의 옷차림에 조언을 해줘야 할 소소한 일도 생긴다. 되돌아보면 타인의 스타일링을 위한 충고를 할 때가 가장 힘들다. 결코 소소한 일이 아니었다. 옷을 못 입는 것은 미적 감각이 부족하거나 최신유행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누군가의 옷차림을 설계하는 것은 인간의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일이다. 진정한 변화는 의지의 영역이 아닌 인지의 영역이다. 백 번의 각오와 다짐이 한 번 제대로 깨닫는 것보다 못하다. 옷을 입는다는 건 그저 옷의 실루엣과 색채와 옷의 재질을 이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장단점과 자신이 맺는 사회 속 관계에 대한 인지능력도 필요하다. 문제는 사람의 장단점은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사람에 대한 이해는 관계 안에서만 해석되고 설명된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은 옷차림 하나만 봐도 그대로 드러난다. 옷은 인간에게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패션 스타일링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직업과 사회적 관계, 사랑하는 관계 3가지가 인간에겐 필요하다. 이게 없으면 삶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고 위험요소를 피해야 하는 전쟁터가 된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의 거대한 옷장이라고 비유해 보자. 그 속에서 우리는 매일의 전쟁터에 나가 우리를 보호해줄 영혼의 갑옷을 고른다. 그 갑옷은 그저 한기와 더위를 막아주는 일차원적 보호를 넘어, 우리의 존재감, 정체성, 용기, 시대를 읽는 눈, 미적 감각 등 결국 취향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며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한다. 사회의 평가와 무관한 중립적 목표란 없다. 패션은 그 목표를 향해 가도록 안팎으로 우리를 돕는 친구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흔히 두려움과 떨림을 경험하며, 이 마음의 자리를 엉뚱한 핑계를 대며 회피한다.



‘나는 키가 작아서’ 혹은 ‘얼큰이(얼굴이 커서)여서’ ‘몸에 군살이 많아서’ 등등. 이런 핑계는 사실 과거부터 타인에게 들었던 비난이 누적되면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심지어는 타인의 평가가 한 개인의 트라우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옷을 입고 멋 내기가 두렵다고 한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내 몸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온다. 패션은 당신의 키를 키울 수도 없고, 10㎏을 한방에 감량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못한다. 단 색과 재질, 옷이 만들어내는 구조적인 선을 통해 환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타인은 당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 이는 어찌 보면 패션이 아니라, 상황에 이름을 붙이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부여하는 의미와 그 의미를 전달해줄 이미지 안에서 산다. 패션은 삶 속에서 자신의 몸을 장식하고 가꾸는 일을 통해 사회와 대면할 수 있게 해주고, 그 속에서 내가 소망하는 이미지들을 만들게끔 해준다. 이보다 큰 마술이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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