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어느 별에서도 볼 수 없었던 파격 발칙 쇼

입력 2016. 11. 0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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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록키 호러 쇼


뜻하지 않게 외계인 본거지 찾은 커플…

가터벨트·망사 스타킹 신은 양성애자 박사와

그의 동료들을 만난 후 펼쳐지는 엽기 스토리



2000년대 초반 런던 방문길에 우연히 들렀던 공연장에서 적잖이 당황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렸다.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패션이 너무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망사 스타킹에 가터벨트를 한 하녀복 차림의 여인들, 짙은 아이섀도와 머리를 한껏 부풀려 잔뜩 힘을 준 사내들까지. 대부분 극 중 등장인물들의 의상을 패러디한 열혈 추종자들이었다. 바로 뮤지컬 ‘록키 호러 쇼’만의 이색 광경이다.




‘록키 호러 쇼’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출연했던 깡마른 외형의 신인 배우 리처드 오브라이언은 공연 하루 만에 프로덕션에서 쫓겨난다. 배역의 해석을 둘러싸고 연출가와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점철된 오버그라운드 시장의 질서와 규칙에 염증을 느낀 그는 자신만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기상천외한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특히, 어릴 적 즐겨보던 삼류 공상과학영화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오는데, 그렇게 등장한 작품이 바로 뮤지컬 ‘록키 호러 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뮤지컬의 줄거리는 말 그대로 별스럽고 심지어 충격적이다. 막이 오르면 커플인 프래드와 자넷이 등장한다. 친구 결혼식에서 만나 연인이 된 두 사람은 자넷이 우연히 부케를 받자 결혼을 약속한다. 그리고 처음 자신들을 만나게 해준 고등학교 과학 선생인 스콧 박사를 만나러 약혼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폭풍우를 만나 길을 잃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음침한 산속 저택에 다다른다. 그저 고장 난 자동차의 견인을 위해 전화 한 통을 부탁하려 찾은 그곳은 사실 지구에 파견된 외계인들의 본거지였다. 기괴한 꼽추 집사 리프라프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저택 안에서 프래드와 자넷은 트랜실베니아 은하계 소속 트랜스섹슈얼 행성에서 지구로 온 양성애 과학자 프랑큰 퍼트 박사와 그의 여자 하인인 마젠타 그리고 콜롬비아를 만난다. 야릇한 분위기에 이끌려 프래드와 자넷은 결국 이들의 파티를 참관하게 되고, 극의 절정에서 프랑큰 박사는 이리저리 시신을 기워 만든 완벽한 근육질의 남자 인조인간 로키를 창조해 낸다.

이로부터 이야기는 어떤 예측도 불허하는 엽기적인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물 스타킹, 가터벨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양성애자 프랑큰 박사는 자넷뿐만 아니라 프래드와도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반대로 자넷은 로키와 사랑을 나눈다. 자넷과 로키의 사이를 알게 된 프랑큰 박사는 질투심에 불타오르고, 뜻밖에 등장한 스콧 박사의 얼토당토않은 복수계획은 무대에 일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갈 데까지(?) 간 프랑큰 박사의 만행을 참다못한 동료 외계인 리프라프와 마젠타는 반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박사를 제거한 외계인들은 프래드와 자넷을 버려둔 채 자신들의 별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록키 호러 쇼 오리지널팀 공연 장면.

 


앞뒤가 꼭 들어맞는 정교함보다 장면마다 펼쳐지는 이야기가 ‘엽기적인’ 파격의 연속이다.

‘록키 호러 쇼’가 최초로 막을 올린 것은 1973년 6월 18일 런던 첼시 지역에 있는 63석짜리 소극장에서였다. 워낙 기괴한 줄거리와 별스러운 음악 스타일로 괴짜 뮤지컬로 통했는데, 미미한 시작과 달리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일탈과 파격의 재미는 관객들의 큰 호응을 불러와 곧바로 500석 규모의 킹스 로드의 극장으로 둥지를 옮기게 된다. 결국, 그해 영국의 대표적 석간지인 이브닝 스탠더드로부터 비평가들이 뽑은 최우수 뮤지컬 드라마상을 수상하며 롱런하기 시작해 자그마치 2960회의 연속공연을 이어가는 진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유명한 감독 짐 셔먼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개봉 초기에는 흥행 참패의 쓴맛도 봤지만 오래지 않아 마니아를 중심으로 B급 영화관에서 높은 관심을 이끌어냈고, 이제는 엽기 컬트 영화의 대명사로 통할 만큼 대표적인 콘텐츠가 됐다. 영화의 타이틀은 무대와 차별화하기 위해 ‘록키 호러 픽쳐 쇼’로 명명됐다.

‘록키 호러 쇼’는 특이한 관극 문화로도 유명하다. 수동적으로 극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참여한다. 열혈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관객용’ 대본도 따로 있어 극 중 소리 높여 배우들에게 대꾸하는 전통 또한 존재한다. 너무 뻔뻔하고 기발한 대사가 등장하면 무대 위 등장인물들이 예정에 없이 소리를 내 웃거나, 당황한 나머지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는 것도 이 뮤지컬의 매력이다. 무대만의 별난 체험을 꿈꾼다면 도전해보기 바란다.


감상 팁

무대로 볼까, 영화로 볼까?

우리나라에선 대학로에서 장기공연이 됐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앙코르를 기다리기에 너무 궁금하다면 영화로 시도해보길 권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음악도 좋다

중독성 강한 노래들이 많아 음반만 들어도 즐겁다. 특히 외계인들의 이상한 춤이 등장하는 ‘타임 워프’는 언제 들어도 신나는 리듬이 인상적이다.


일탈과 파격을 즐겨라

등장인물들이 예쁘고 매력적이라기보다 적나라하고 파격적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보이는 대로’ 환호하고 즐기면 된다.


<원종원 교수 뮤지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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