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봄베이 드림스
2000년대 초반 런던에서 막을 올려 인기리에 공연이 이어진 뮤지컬 ‘봄베이 드림스’는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참여한 뮤지컬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 그가 맡은 역할이 작곡자가 아닌 기획자라는 사실이다.
음반 판매량 1억 장의 A. R. 레만 등 참여
봄베이 드림스의 작곡가는 인도의 인기 음악가 A. R. 레만이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인도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곧 흥행을 의미할 만큼 유명한 영화음악가다. 단적인 예로 그는 힌두 문화권에서 1억 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 마돈나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음반을 팔아치운 괴력의 사나이다.
여기에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 태생의 인기 극작가 미라 시알, 100여 편이 넘는 인도 영화에 출연했다는 달립 타힐, 실제 볼리우드 영화판에서 안무가로 큰 명성을 얻고 있는 파라 칸 등이 참여했다. 봄베이 드림스는 그야말로 인도 최고의 제작진과 배우가 참여하는 뮤지컬이 됐다.
특히 오리지널 콘셉트의 공동저자인 세자르 카푸르는 1998년 소개돼 큰 화제를 모았던 영국 영화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1995년 작 인도 영화 ‘밴디트 퀸’ 등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이다. 물론 여기에 극작가 돈 블랙, 안무가 앤서니 반 라스트, 연출가 스티븐 핌롯 등 웨스트엔드의 대표적인 제작자들도 합세해 인도에 국한되기보다 동서양 문화의 합일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가미됐다.
인도 봄베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의 사랑’
뮤지컬의 배경은 인도의 봄베이 빈민가다. 껄렁거리기 좋아하는 가난한 청년 아카쉬는 화려한 스크린을 동경하는 인도의 평범한 청춘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대중의 관심을 얻어 유명스타가 되고 이 과정에서 젊은 영화감독 프리야를 알게 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결국 둘은 안타까운 이별을 경험한다. 그러나 빈민가를 없애버리려는 암흑가의 보스 JK의 음모에 프리야의 약혼자인 비카람이 연루된 것을 알게 된 아카쉬는 결혼식장에 난입하게 되고, 결국 사악한 이중인격자인 비카람에게서 그녀를 구해낸다. 영화계에 대한 동경이 한낱 신기루임을 깨닫게 된 아카쉬는 프리야와 손을 맞잡고 도시 저편의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난다는 줄거리다.
공연의 흥행은 배우들의 인기로도 이어졌다. 초연 무대의 주인공인 아카쉬 역의 라자 제프리는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력은 짧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훤칠한 몸매에 시원스러운 연기력과 가창력까지 겸비하고 있어 장래가 촉망되는 배우였는데, 봄베이 드림스의 성공으로 더욱 주목받게 됐다.
또한, 여주인공 프리야 역으로 등장했던 프리야 칼리다스는 영미권보다 인도에서 더 유명한 미녀 배우다. 그녀가 부른 주제가 ‘샤카라카 베이비’는 싱글 앨범으로도 발매돼 큰 인기를 누렸다. 무엇보다 고운 음색이 장점인데, 얼핏 듣기에 인도 태생의 ‘미스 사이공’ 여주인공인 레아 살롱가와 유사한 면이 있어 제작진이 ‘제2의 레아 살롱가’ 탄생을 은근히 기대하게 하기도 했다.
인도 민속리듬에 반한 서양 관객들
작품의 소재만큼이나 무대도 이색적이다. 특히 분수가 쏟아지는 영화 세트장에서 아카쉬와 인기 영화배우 라니가 일단의 무희들과 이국적인 인도풍 멜로디에 맞춰 군무를 벌이는 장면은 단연 이 작품의 백미를 이룬다. 일부 영국 언론에서는 웨버의 뮤지컬 ‘선셋 대로’ 이래 영화계를 배경으로 한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찬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한 편의 뮤지컬 무대가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지고지순한 예술로서 합일된 감동을 일깨우는 명장면이다.
봄베이 드림스는 브로드웨이로도 진출했지만, 영국에서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등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세계 문화산업의 제일선에서 봄베이 드림스가 일궈낸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이것이 서구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용이나 형식이라기보다 인도 특유의 지역색 짙은 공연예술 작품이라는 데 더 큰 의의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극장을 나설 때 ‘샤카라카 베이비’에 어깨춤을 들썩이며 즐거워하던 서양 관객들의 모습들이었다. 일명 ‘방그라’ 댄스 뮤직이라고도 불리는 인도의 민속 리듬이다. 다양한 아시아 문화가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 올려지고 실험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반길 만한 사실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언젠가 우리 문화상품에도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기대 또한 하게 한다. 이래저래 흥미롭고 반가운 뮤지컬이다.
[봄베이 드림스 감상 팁]
인도식 댄스뮤직을 즐겨라
서양의 댄스음악과 인도풍의 선율이 더해져 탄생한 방그라 댄스 뮤직은 무척 이국적이면서도 흥겹다.
볼리우드 영화는 대부분 뮤지컬 영화
볼리우드(봄베이 영화산업의 별칭으로 할리우드에서 따온 말) 영화의 특징은 대부분 뮤지컬적인 매력이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등장인물 모두가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춘다.
통속극 속에 담긴 철학
인도 영화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줄거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오랜 역사 탓인지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주제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원종원 교수 뮤지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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