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뚱녀, 세상의 편견과 ‘맞짱’

입력 2015. 11. 1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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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헤어스프레이(Hairspray)


60년대 미국사회의 논쟁이었던

흑백갈등, 반전, 히피 등 통해

저항하는 젊음 시대정신 담아

 

엄청난 거구에 걸걸한 목소리

별난 여주인공 엄마 캐릭터 인기

 

2003년 토니상 주요 8개 부문 석권

우리말 무대도 세 차례나 앙코르

 

 

 

 

 

 동이 틀 때까지 격렬하게 춤을 춰도 머리 모양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겐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다. 왕년의 청춘들에겐 ‘그리스’(‘구리스’라고도 불렸던 머릿기름)가 있었고, 다음 세대들에겐 ‘무스’와 ‘헤어스프레이’가 인기를 누렸다. 삶이 뜨거웠던 그들에겐 최고의 친구이자 필수품이었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이 물건들은 각각 뮤지컬 제목으로 등장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존 트래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이 출연한 영화로도 주목받았던 ‘그리스’와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무대용으로 각색돼 좋은 흥행을 기록한 ‘헤어스프레이’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가슴 한편에 담고 있을 젊은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해 사랑받은 대표적인 히트 뮤지컬들이다.



댄스경연대회 무대로 흑백 갈등과 모순 코믹하게 풀어내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시작은 1988년 작 동명 타이틀 영화에서 비롯됐다. 괴짜 감독으로 유명한 존 워터스가 메가폰을 잡았던 이 작품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흑백 간의 갈등과 모순을 볼티모어의 한 방송사 댄스 경연대회라는 소재를 통해 코믹하게 풀어냈다. 2002년 브로드웨이에 등장한 뮤지컬의 줄거리는 바로 그 영화의 내용을 근간으로 한 것이고, 2007년 다시 스크린용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는 무대를 영상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영화에서 시작돼 뮤지컬로 변신했다가 다시 뮤지컬 영화로 재가공된 이 작품은 문화산업의 원 소스 멀티 유스를 극명하게 보여준 재미난 사례다.

 이 뮤지컬의 인기는 워터스의 원작 영화에 등장했던 인물을 뮤지컬 무대에서 극적으로 표현한 데 기인한 부분이 크다. 예를 들어 원작 영화에서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주인공인 트레이시보다 그녀의 엄마 에드나 역을 맡은 배우 디바인이었다. 왜냐하면 디바인은 일명 드레그 퀸(여장 남자), 그것도 엄청난 거구에 목소리까지 걸걸한 별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뉴욕에서는 이런 부류의 성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그러나 동물원 우리 안의 구경거리를 보는 시각이 아닌 ‘별난’ 인생을 살아가는 주변의 이웃이나 동료 같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고,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자연스레 2002년 영화가 무대용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영화 속 디바인의 이미지를 대체할 무대 위 인물이 누굴까 하는 묘한 흥분과 기대를 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또 다른 걸출한 동성애자 배우 하비 피어스타인이 등장함으로써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엄청난 거구에 걸걸한 목소리의 소유자였지만 수다스럽고 여성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력 강한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역을 무대에서 적절히 소화해 냄으로써 극장을 찾는 관객들로부터 연일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사실 미국 연예계에 이미 잘 알려진 엔터테이너였던 피어스타인이 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그때까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턱수염까지 밀어버릴 만큼 정성을 기울인 것도 큰 화제가 됐다.

 1960년대 미국사회를 풍자하는 이 뮤지컬의 주된 모토는 편견을 깨자는 것이다. 별로 날씬하지도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은 여성 캐릭터 트레이시가 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관객의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유별난 시도 탓이다. ‘헤어스프레이’가 꼬집는 편견은 물론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논쟁이 됐던 흑백 간의 갈등, 흑인들의 인권 문제, 반전, 히피 등 이 작품에서 깨뜨리고자 한 사회와 제도의 편견·선입견은 무궁무진할 정도로 다양하다. 이것은 다시 바로 그 시절에 사춘기를 보낸 미국 젊은이들의 시대정신이자 그들만의 ‘코드’이기도 했다, 저항하고 반항하고 깨트려버리는 것이 젊음의 상징이자 특권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는 2003년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등을 포함 8개 부문의 토니상을 거머쥐며 그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뮤지컬로 등극했다. 남우주연상은 에드나 역의 하비 피어스타인에게 돌아갔으며, 여우주연상은 트레이시 역으로 등장한 마리사 자렛 위노커가 차지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1980년대 팝스타 신디 로퍼와 흡사한데, 특히 뮤지컬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노래 ‘굿모닝 볼티모어’는 특유의 비음 섞인 여흥구로 즐거움을 주면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작사·작곡 및 편곡을 맡았던 마크 쉐먼도 그해 토니상을 받았는데, 그는 TV 만화 ‘사우스 파크’의 음악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뮤지컬이 영화로 다시 새 옷을 입게 된 것은 2007년의 일이다. 할리우드의 영화자본들이 늘 그러했듯이 뮤지컬 영화로 탈바꿈하면서 헤어스프레이는 글로벌 스타들에 의해 캐릭터들이 재구성되는 큰 변화를 겪게 됐다. 우선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중성적인 이미지의 에드나 역으로는 특수 분장을 몸에 걸친 존 트래볼타가 발탁됐고, 트레이시 역으로는 통통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니키 블론스키가 선택됐다. 뮤지컬 영화의 연출과 안무는 애덤 쉥크먼이 맡았는데, 그는 2001년 발표됐던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영화 ‘웨딩 플래너’에서 기획과 연출을, 그리고 2006년 개봉됐던 영화 ‘스텝 업’에서 기획과 안무를 맡았던 잘나가는 안무가이자 영화인이다.



영화 원작, 뮤지컬로 각색됐다가 다시 영화 제작

 우리말 무대도 인기를 누렸다. 2007년 여름에 선보였던 첫 무대를 필두로 2012년까지 모두 세 차례의 앙코르 무대가 막을 올렸다. 방진의·오소연 같은 뮤지컬 배우는 물론 방송인 박경림도 주인공 역으로 무대에 올라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비록 ‘헤어스프레이’에 얽힌 편견과 오해가 미국인들의 그것과 크고 작은 간극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흥겨운 리듬과 신나는 무대의 반전은 우리 관객들로부터도 많은 지지와 사랑을 이끌어냈다.

 화려한 컬러사진보다 빛바랜 흑백사진이 수만 가지 사연을 담고 있는 것처럼, 이 뮤지컬 속에 담긴 미국인들의 60년대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흥미롭게 연상하며 감상한다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료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청춘들에겐 진정으로 권하고 싶은 재미난 뮤지컬 작품이다. 


 ‘헤어스프레이’ 감상 Tips


 1. 음반에 도전해보자

 뮤지컬이 인기 있는 이유는 음악을 통한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못지않게 노래가 좋은 작품은 더욱 그렇다. 세상 근심 다 날려버리고 신나고 경쾌하게 즐겨보기 바란다.

 2. 영화를 찾아보자

 뮤지컬 영화도 좋다. 특히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으로 선발된 니키 블론스키는 통통한 외모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배우다. 실컷 웃고 싶을 때 보면 효과 만점이다.

 3. 한국어 공연에서 엄마는 누가?

 우리말 무대에서도 엄마 역할은 늘 화제였다. 김명국·정준하·문천식·공현진이 무대에 등장했었다. 지금도 이 뮤지컬은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감상할 때 더 크게 웃을 수 있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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