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희대의 연쇄살인마 괴기 뮤지컬로 부활

입력 2015. 10. 15   15:37
0 댓글

<37>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1880년대 말 창부 잔혹 살해 실화

작가적 상상 더해 미스터리물 완성

숨 막히는 사건 전개 손에 땀 쥐게 해

 


 


 

 

 런던의 베이커 스트리트를 방문하면 늘 관광객들로 넘실대는 곳이 있다. 밀랍인형관으로 유명한 마담 투소(Madame Tussauds)다. 1761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투소 부인은 프랑스혁명을 겪으며 자신이 목격한 실존 인물들의 밀랍인형을 만들었고, 도버해협 건너 영국에서 연 전시가 큰 인기를 끌자 1835년 런던에 상설 밀랍인형관을 설립한다. 오늘날에는 세계적 수준으로까지 전시관을 넓히며 명성을 누리고 있다.



희생자 장기 적출…범인 끝내 못 찾아

 마담 투소는 여러 주제로 전시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인이나 문화예술계 인사는 물론 영화배우나 탤런트, 인기 가수, 스포츠 스타 등 평소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들이 총망라돼 있다. 마이클 잭슨에서 레이디 가가, 멜 깁슨, 오바마 미 대통령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르기까지 만나지 못할 유명 인사가 거의 없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밀랍인형들을 보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체험을 하는 별스러운 재미도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살인마 잭의 거리’다. 산업혁명이라는 근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대도시 런던에서는 1880년대 말 창부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더욱 기괴한 일은 살해된 희생자들의 장기가 적출돼 사라진 것이었다. 범죄 현장은 인간이 저지른 짓이라고 여기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지만, 내장을 잘라낸 솜씨는 마치 외과 의사가 수술한 것처럼 과감하고 정교했다. 그래서 사건은 더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측이 이어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훗날 런던 경시청인 스코틀랜드 야드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편지가 도착했는데 이 편지에 발신자로 적혀 있던 이름이 바로 ‘잭 더 리퍼’였다. 오늘날까지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이 사건은 역사 속 실화라 더욱 소름이 끼친다.

 잔인하기가 비할 데 없는 이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많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이한 소재로 각광받았다. 혹자는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 코난 도일이 살인마였다는 내용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괴물 같은 사내가 내장을 먹기 위해 살인을 벌이는 내용의 괴기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작가들의 기괴한 관심과 취미가 별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우리 예술계에서도 의문의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날 보러와요’ ‘살인의 추억’이라는 연극과 영화로 재구성된 바 있다. ‘잭 더 리퍼’ 역시 후대의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각광을 받았던 셈이다.



배경은 런던,제작진은 체코 예술가들

 특히 뮤지컬로 만들어진 ‘잭 더 리퍼’는 작가적 상상력이 조금 더 가미된 미스터리물로 완성됐다. 약물 중독자였던 담당 수사관 앤더슨의 보고서 형식을 빌려와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신문기자 먼로, 이중적인 캐릭터로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는 외과의사 다니엘 그리고 잔혹한 살인마 잭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희대의 살인 사건을 재구성해내는 가상의 스토리가 더해진 것이다.

 물론 극적인 흥미와 전개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스코틀랜드를 뒤흔들었던 희대의 장기 적출 연쇄 살인 사건과 교묘히 결합해 ‘그럴싸한’ 뒷맛을 남긴 것도 뮤지컬만의 묘미라 할 만하다.

 뮤지컬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의 런던이지만, 작품을 만든 사람은 체코 예술가들이다. 음악을 작곡한 바소 파테이르는 슬로바키아 태생으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중음악가이며, 대본을 쓴 이반 헤자는 체코 국영방송의 문학예술 수석편집장으로 TV·영화·라디오 분야에서 일하는 방송인이다. 연출 또는 프로듀서로 참여한 미카엘 코추렉 역시 체코의 대표적인 프로듀서 겸 배우이자 연출가로 프라하에서 다수의 연극과 뮤지컬을 흥행시켰다.



턴테이블 무대 연출, 끊임없는 공간 창출

 뮤지컬 하면 일반적으로 솜사탕 같은 사랑 노래나 낭만적인 연애담을 떠올리지만 이 작품은 보기 드물게 괴기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묘한 매력을 지니게 됐다. 무대라서 더욱 흥미진진하고, 공연이라서 손에 땀을 쥐게 되는 재미가 남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국내에서 ‘잭 더 리퍼’는 2009년 초연 당시부터 스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다니엘 역으로는 초연 배역이었던 안재욱과 엄기준 외에 가수 출신으로서 뮤지컬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이지훈이나 슈퍼 주니어의 성민 등이 가세해 성황을 누린 적도 있고, 잔혹한 살인마 잭 역으로는 신성우와 함께 뮤지컬 배우 이건명이 등장해 사랑받기도 했다.

 막을 올릴 때마다 스타 캐스팅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캐릭터마다 등장하는 배우가 너무 많아져 경우의 수를 조합해 관극을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선택의 폭이 넓어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물론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어느 배우가 나오는 어느 날 공연이 제일 볼만하다는 식의 소문이 퍼지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배우들이 선의의 경쟁을 해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그 자체다. 무대예술로서의 뮤지컬의 매력은 인기배우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며 볼거리 가득한 무대를 구현해내는 ‘과정’이다. 턴테이블 무대를 활용한 끊임없는 공간 창출, 수려한 멜로디의 음악들이 가져다주는 비장미, 숨 막히는 미스터리와 사건의 전개는 뮤지컬도 손에 땀을 쥐며 즐길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새삼 일깨워준다. 편견을 깰 때, 감동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앙코르 공연 소식이 들리면 꼭 도전하라 추천하고 싶은 재미난 무대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잭 더 리퍼’ 감상 Tips


 1. 대중문화 속의 잭 더 리퍼들 

 잭 더 리퍼는 영화나 드라마 등 많은 대중문화에서 괴상한 캐릭터로 자주 등장한다. 실제 사건을 알고 보면 더욱 소름 끼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이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2. 마담 투소가 궁금하다면?

 우리나라에도 마담 투소가 생겼다. 국내 전시에는 아쉽게도 잭 더 리퍼의 거리가 빠졌지만, 그래도 대체로 신기하고 때론 섬뜩한 느낌은 여전하다. 데이트 코스로도 가볼 만하다.

 3. 뮤지컬이 기다려진다.

 조만간 국내 앙코르 무대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선입견이나 사전정보 없이도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무대이니 도전해보기 바란다. 추리물을 좋아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