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예술이 된 서커스

입력 2015. 04. 3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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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퀴담(Quidam)


 

 

 

 

 

 

 

대화가 사라진 소외된 가족 아이가 떠나는 상상의 세계

환상적 무대·감탄 자아내는 묘기  애절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유명

전문 춤꾼·가수 활용 완성도 높여

 

 

 ‘블루 오션’. 경쟁이 없어 독점적인 시장 형성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블루 오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회사가 있다. 바로 캐나다의 서커스단인 ‘태양의 서커스’다. 서커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한 글로벌 문화기업이다. 환상적인 무대와 감탄을 자아내는 묘기, 그리고 이들이 이뤄내는 예술적 조화는 ‘태양의 서커스’의 전매특허 같은 매력이다. 수많은 인기작이 있지만, 그래도 딱 한 작품만 선택하라면 대부분 사람이 손꼽는 무대가 있다. 내한 공연으로 인기를 누렸던 대표 레퍼토리 ‘퀴담’이다.

 

 ‘퀴담’이란 프랑스어로 ‘길모퉁이에서 서성거리는 이름 모를 행인’이라는 뜻이다. 서커스치고는 형이상학적이고 고상하게까지 보이는 제목부터 이색적이다.

 조명이 밝아오면 거실이 보인다. 뜨개질을 하는 엄마와 신문을 읽고 있는 아빠, 그리고 그 사이를 쓸쓸히 맴도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스치듯 지나간다. 여느 가정집 풍경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관객은 곧 이 가족의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불편함을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소외(疏外)’다. 뜨개질 바늘을 잡고 허공을 응시하는 엄마의 공허한 눈동자, 뚫어져라 신문만 바라보고 있어 마주할 수 없는 아빠의 시선, 그리고 부모의 관심이 그리운 아이…. 바로 대화 없이 살아가는 현대 가족관계의 ‘쓸쓸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머리 없는 한 사내가 우산을 쓴 채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의 부모는 이 이방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이 사내는 어린이의 눈으로만 만날 수 있는 환상 속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중절모(머리가 없으니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를 떨어뜨리곤 사라진다.

 호기심은 모든 아이의 공통분모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모자를 써본다. 순간, 무대는 소용돌이치며 꿈틀댄다. 사실 이 모자는 아이의 상상 속으로 떠나는 마법의 매개체였던 것이다. 거실에 앉아 있던 아이 부모는 무대 위로 둥실 떠올라 사라지고, 이제 관객은 아이의 눈을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는 ‘퀴담’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로부터 무대는 탄성을 자아내는 갖가지 현란한 묘기와 이미지들로 빠르게 전개된다. 쳇바퀴 돌 듯 회사와 집을 오가는 아빠(혹은 현대 남성 직장인)의 모습을 상징화한 거대한 원형 굴레 속의 인간이 묘기를 펼치는가 하면, 꿈을 잃고 살아가는 엄마(혹은 현대 여성)의 모습을 그린 빨간 실크 천에 매달린 여인은 공중에서 아름다운 율동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어릴 적 장난꾸러기 모습으로 뛰어다니던 아버지의 어린 분신이 웃음을 선사하고,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나 봄 직한 이름 모를 이미지들이 화려한 의상과 안무에 뒤섞여 펼쳐진다.

 때로는 이유 없이 즐겁고 또 때로는 원인 없이 서글픈,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무의식 세계 같은 장면들을 지나 극이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다시 처음 무대가 시작됐던 거실. 그러나 그곳에는 처음과 달리 따뜻한 미소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가 서 있다. ‘퀴담’의 세계를 거쳐 이제 어른들도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게 됐다는 지극히 서커스다운 해피 엔딩이다.

 마지막 장면은 또다시 등장한 얼굴 없는 사내-‘퀴담’과의 만남이 재현된다. 그는 더 이상 소녀 가족에게 필요가 없어진 자신의 모자를 되찾으러 온 것이다. 아이에게서 모자를 되돌려받은 ‘퀴담’은 또 다른 현대 사회의 쓸쓸한 아이들을 찾아 길을 나선다.

 ‘퀴담’의 매력은 서커스를 예술의 수준까지 승화시킨, 그야말로 ‘아름다운’ 서커스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몽환적인 이미지들은 차라리 한 편의 무용극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묘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전문적인 춤꾼이나 가수를 등장시켜 극적 완성도를 충실히 이뤄낸다는 것도 ‘퀴담’만의 특색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서는 이런 ‘퀴담’을 두고 “서커스를 능가하고 무대를 넘어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시각적으로 충실한(incredible visible) 공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퀴담’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실제 라이브로 연주되고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노래일 것이다. 그 점만 보자면 사실 이 작품은 ‘서커스’라기보다 ‘뮤지컬’에 가깝다. 단순히 서커스 묘기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자 ‘상품’인 것이다. 덕분에 ‘퀴담’의 음악은 기념품 역할마저 한다. 공연이 열리는 도시마다 배경음악을 담은 음반이 매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퀴담’의 음악은 그 멜로디가 어찌나 구슬프고 아름다운지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이 알려지기 전에 심지어 드라마 메인 테마곡으로 쓰인 적도 있다. 태양의 서커스의 창립자이자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기 랄리베르테의 진두지휘 아래 베누아 쥐트라가 공연 내용에 맞춰 처음부터 작사·작곡을 하고 음악감독으로 주도면밀하게 노력한 결과다.

 오늘날 ‘태양의 서커스’에서는 ‘퀴담’ 외에도 ‘살팀반코’ ‘알레그로’ ‘드랄리온’ ‘바레카이’ ‘오’ ‘미스테’ ‘주마니티’ ‘솔라리움’ ‘라 누바’ 등 수십 개의 레퍼토리를 세계 각지에서 공연하고 있다. 창단 당시 75명에 불과했다던 단원도 지금은 수천 명에 이르며, 국적도 다양해 본부와 상설 공연장이 있는 캐나다는 물론 러시아·중국·미국·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전문 춤꾼, 곡예사, 배우들이 참여하는 ‘다국적 문화상품 제조회사’로 성장했다.

 ‘퀴담’의 음악은 애절하며 아름답고 사랑스럽기로 정평이 있다. 15년이 넘은 레퍼토리는 영구 종연이 되기 때문에 이젠 무대를 통해 감상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영상이나 음반을 통해서라도 감상해보라 권하고 싶다. 물론 발상의 전환이 주는 문화산업의 진화 공식을 염두에 두고 즐긴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퀴담’ 감상 Tips

1. ‘렛 미 폴(Let me fall)’

 서글픈 선율의 이 노래는 하늘에서 펼쳐지는 공중 묘기의 배경음악이다. ‘나를 추락하게 그냥 두라’는 노랫말이 아슬아슬한 비주얼과 어우러지면 눈물이 절로 흐를 정도로 아름답다. 조쉬 그로반의 리메이크 버전도 꽤 유명하다.

2. 영상으로도 즐길 수 있다

 무대가 궁금하다면 DVD를 추천한다. 꽤 볼만하다. 게다가 비싼 티켓을 사지 않아도 된다.

3. 음악, 들어는 봤나?

 ‘퀴담’의 노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글로벌 콘텐츠다. 두서너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강한 매력이 듬뿍 담겨 있다. 꼭 도전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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