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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사의 위대함, 새 역사를 개척하다

입력 2014. 12. 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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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브람빌라의 ‘아라곤의 아구스티나’ (1808)


나폴레옹 전쟁 유일한 지휘관스페인의 아구스티나

잡지의 삽화로 제작 여인과 대포극적 대비로 눈길

쓰러진 연인 대신해 대포 점화하는 여인의 용기 담아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계 언론을 놀라게 하고 있는 여전사들이 있다. 시리아 북부 코바나(Kobana)에서 이슬람국가 무장세력과 결연히 맞서고 있는 쿠르드의 여성방위대(민병대)가 그들이다. 이들은 병력도 부족하고 무장도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고향을 지키겠다는 결의 하나만은 강고했다. 미국의 공습 지원이 있었지만, 한 달 이상 탱크와 중화기로 무장한 이슬람국가를 막아낸 것은 그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는 적지 않은 여전사를 기록하고 있다. 전설적인 존재인 아마조네스와 영국의 공격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Jeanne d’Arc·1412~1431)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여성은 자신의 고향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선의 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코바나의 쿠르드 여성이 그렇듯이 이름을 남기지 않은 여전사들은 남성의 빈자리를 메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연인의 주검 위에 선 여인

 근대의 역사에 기록된 소중한 사례가 스페인 아라곤의 아구스티나(Agustina de Aragon·1786~1857)다. 당시 한 잡지에 게재된 브람빌라(Fernando Brambila)의 삽화는 가녀린 몸매의 한 여인이 쓰러진 군인의 몸을 딛고 대포를 발사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그녀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최전선에 갔다고 한다. 먹을 것이 든 바구니를 들고 포대 앞에 이르렀지만 포병들은 모두 쓰러지고, 무너진 성곽 사이로 프랑스군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앞으로 달려가 쓰러진 연인의 손에 들려있던 점화봉을 낚아챈 것이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스(나폴레옹)의 폭력적 지배에 저항하고 있었다. 1808년 5월에 시작된 봉기는 마드리드 등 일부가 진압됐으나 북부지방에서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은 자치지역인 아라곤의 주도 사라고사(Zaragoza)는 스페인 저항의 중심지였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중간쯤에 위치한 사라고사는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팔라폭스(Palafox)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군이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도시의 북쪽과 동쪽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고 도심 주변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방어에 유리했다. 6월 15일 이곳에 도착한 프랑스군이 전면공격을 시도하지만 700여 명의 사상자만 내고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50여 문의 곡사포와 공성 대포를 지원받은 프랑스군은 7월 2일 2차 공격을 단행하게 된다. 27시간의 포격과 함께 가장 취약한 서쪽 문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화가 슈코돌스키(January Suchodolski·1797~1875)의 그림은 바로 그 돌파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포격으로 허물어진 성벽 사이로 돌격하는 프랑스 보병들과 이를 막기 위해 성벽과 건물 곳곳에 숨어 공격하는 스페인 군인 및 주민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 속에 격렬한 전장의 모습은 사원 돔 지붕에 걸려 있는 푸른 하늘의 평화로움과 강한 대조를 보이면서 한 편의 서사시처럼 묘사돼있다. 비록 성벽은 허물어져 위태로워 보이지만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사원의 돔과 완강한 성벽, 그리고 건물 곳곳에서 내뿜는 화약 연기는 “빵칼까지 들고 싸우겠다”는 스페인 사람들의 강한 결의를 보여주는 듯하다.

 


남성적인 것을 초월하는 여성

 아구스티나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 2차 공격 때다. 그녀의 연인은 서쪽 포르틸로(Portilo) 문을 방어하는 포병이었다. 그녀가 다가서는 순간 그는 총에 맞아 쓰러졌다. 포탄을 장전하고 막 발사하려는 순간이었다. 달려드는 프랑스군이 당장이라도 도심으로 진입할 상황이었다. 그녀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달려가 아직 꺼지지 않은 발화봉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쓰러진 연인을 딛고 선 채, 왼손으로 중심을 잡으며 오른손으로 대포를 점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녀린 허리에 아리따운 외모가 22살의 젊음과 여성적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면, 그녀의 몸통보다 더 굵은 대포의 포신은 남성적 힘을 느끼게 만든다. 이 그림은 잡지의 삽화로 제작됐다는 점이 말해주듯이 예술적으로 그리 수준 높은 작품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둔탁하기 이를 데 없는 대포를 아슬하게 점화하는 가녀린 여인의 결단이 극적 대비를 이루면서 깊은 감동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남성적인 것들이 죽어 있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녀 홀로 살아있다. 거대하고 차가운 대포 역시 그녀를 통해 생명력을 획득하게 된다.

 그녀가 점화한 대포는 얄궂게도 프랑스가 자랑하는 그리보발(Gribeauval) 24파운드 대포였다. 포도알 같은 파편을 뿌리는 산포탄(grapeshot)이 발사되면서 돌격하던 프랑스군은 낙엽처럼 쓰러졌다. 이 모습을 목격한 스페인 군인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공격하자 그들은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군의 사라고사 1차 봉쇄는 이렇게 실패로 끝났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시를 구한 아구스티나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스페인의 잔 다르크’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그녀의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해 사라고사가 프랑스군에게 점령된 이후 그녀는 체포되고 자신의 아들이 프랑스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통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항전을 계속했다. 과감한 탈옥 끝에 게릴라(Guerrilla) 부대를 지휘한 그녀는 나폴레옹 군대에 대적했던 윌링턴 부대의 유일한 여성지휘관이었다. 보병 대위로 진급한 그녀는 1813년 비토리아 전투에서는 전투부대를 이끌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투혼을 보여줬다.



게릴라전의 기원

 스페인어로 ‘작은 전쟁’이란 의미의 게릴라전은 이 전쟁에서 전략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병력이나 무장에서 절대적 열세였던 스페인 인민들은 세계 최강의 프랑스 육군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싸울 수 없었다. 그들은 익숙한 산악지형을 이용하며 매복·기습공격·방화·사보타주 등의 방법으로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이것이 오늘날 게릴라전의 근대적 원형이다. 스페인인들은 전력상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르곤의 아구스티나가 스페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여인들도 치맛자락 휘날리며 전선을 지켰다. 행주산성이란 이름을 만든 치마부대 역시 여전사들이었다. 부산진 전투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 기왓장을 던지며 왜적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여인들도 기억할 수 있다. 2014년 11월 시리아의 작은 도시 코바나에서 자신의 고향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이들이야말로 21세기의 잔 다르크이며 아구스티나인 것이다.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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