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내 몸 안의 주치의 ‘나노봇’
세포보다 더 작은 의학용 로봇 ‘나노봇’ 속속 등장
암 치료용 박테리아 기반 박테리오봇 국내 개발
구글도 알약 하나에 나노봇 2000여 개 넣는 연구
1987년 개봉된 SF 영화 ‘이너 스페이스’에는 매우 특이한 잠수함이 등장했다. 조종사가 이 잠수함에 승선한 후 초소형화 기술을 거치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아졌다. 적혈구 크기로 축소된 잠수함은 주사기를 통해 사람 몸에 투입돼 질병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했다. 우연한 사고로 잠수함을 탄 채 사랑하는 연인의 몸속으로 들어간 조종사가 탯줄을 감고 놀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만나는 장면은 SF영화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 속 상상으로만 머물 것이라 여겼던 세상이 지금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세포보다 더 작은 의학용 로봇인 ‘나노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 난치병 환자들에게 치료 희망을 주고 있는 제품들도 있다.
◆암 표면에 직접 항암제 투여
가장 대표적인 것인 박테리아 기반 나노로봇을 뜻하는 ‘박테리오봇’이다. 전남대 박종오 교수가 이끄는 ‘박테리오봇 융합 연구단’이 개발한 박테리오봇은 생물체인 박테리아와 약물이 들어 있는 마이크로구조체로 구성돼 있다. 크기가 직경 3㎛(마이크로미터, 1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m)로 아주 작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이지만 암 치료 등에는 획기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테리아에 난 털인 편모를 이용해 몸속에서 유영한 후 암세포에 도착하면 마이크로구조체를 터뜨려 암세포 표면에 직접 항암제를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도 성공적으로 끝낸 상태라 조만간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 UC샌디에이고 나노공학과 연구진도 나노 크기의 치료용 로봇 개발에 성공했다. 아연 소재로 만들어진 이 로봇은 머리카락 굵기 수준의 작은 크기(60㎛)를 자랑한다. 특히 올해 초 실험용 쥐의 몸에 주입하는 실험에서 위산과 반응해 수소 거품을 일으키며 위벽으로 나아가 위장 조직에 약물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사람의 몸에도 마이크로 로봇을 투입해 소화 궤양 등 위장 질병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3D 프린팅으로 나노봇 제작도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 연구진이 개발한 나노봇(사진)도 기대를 모은다. 지네와 흡사한 모양의 이 나노봇은 회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질환을 앓고 있는 심장에 도달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연구진은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나로봇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60㎛ 크기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독일 뮌헨공과대(TUM) 연구팀도 최근 DNA를 사용해 나노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DNA 나노 로봇’의 크기는 약 100nm(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00분의 1㎛). 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다. 특히 이 나노 로봇은 팔처럼 양 끝에 붙어 있는 집게 두 개를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다.
◆RFID로 몸속에서 질병 정보 전송
세계 최대 IT업체로 꼽히는 구글도 비밀 프로젝트팀인 ‘구글X랩’을 통해 나노봇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구글이 연구 중인 나노봇은 혈액의 세포만 한 크기로 알약 하나에 2000여 개나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알약을 먹으면 자기성을 띤 작은 나노입자로 구성된 나노봇들이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피 속에서 질병을 찾는 방식이다. 특히 발견된 질병 정보는 RFID(무선인식시스템)를 통해 몸 밖의 스마트폰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작은 나노봇이 직접 사람의 몸에 들어가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길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론적으로 나노봇이 치료하지 못할 질병은 없다고 하니 가히 ‘현대판 만병통치약’으로 불릴 만하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는 “나노봇이 질병을 찾아내는 것이 현실화되면 인간은 질병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예견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닐을 한 겹 뒤집어 씌워놓은 것 같은 흐릿한 사진으로 자신의 아이와 처음 대면하는 ‘황당함’에서 벗어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너 스페이스의 주인공처럼 아내의 몸속에 있는 아이를 직접 만나러 가는 상상도 조만간 실현될지 모른다.
이국명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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