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계 속의 태극기’를 연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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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세와 태극기에 대한 새로운 맹세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 당시 하얼빈 역에 ‘안중근 표지석’을 설치하자고 제안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조치였다. 즉, 2012년 아베 정권 등장 이후 급격히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일본에 대해 한·중·일 세 나라가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 위에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일종의 메시지였다.
안중근 장군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고 국권이 박탈당한 후 태극기 위에 혈서로 ‘대한독립’을 맹세했던 의병지휘관이었으며,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 장군을 닮고자 했던 인물이다. (사진 ①)
수많은 의병들이 일제 불법 침략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지만, 안 장군은 일본군 포로를 만국공법에 따라 석방했던 정의로운 대한의 지휘관이자 일본의 범죄행위를 일깨워준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오히려 안중근을 ‘범죄자’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더구나 최근 아베 총리는 전범들의 위패가 봉안된 신사참배, 가미카제 특공대 영화관람 등을 이어 가고 있다.
이런 행보는 아베 개인의 행위로 보기에는 너무도 계획적이고 공격적이며, 지난 세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행했던 끔찍한 범죄행위를 상기시킨다.
그들의 범죄행위로 태극기가 말살됐을 때 우리는 통한의 시기를 살았고, 아직도 통일국가가 아닌 분단의 세월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무지 반성의 기미가 없고 오히려 도전적이다.
한편 1945년 광복을 맞았을 때 비록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됐지만 국기는 좌우를 떠나 하나였다. 바로 태극기다.
그러나 북한 공산집단은 48년 7월 돌연 인공기를 만들고 태극기를 버렸다. 이어 그들은 50년 6월 25일 인공기를 앞세우고 남침, 태극기를 말살하고 한반도를 인공기로 물들이려 획책했다. 그러나 야욕은 분쇄됐고, 태극기를 배신한 북한은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로 전락했다.
2013년 12월, 김일성의 사위이자 자타가 공인하던 북한 내 제2의 실권자 장성택과 그 일당이 속전속결로 처형된 것은 그 증표의 하나다.
더구나 세계에 유례가 없는 북한의 3대 세습 정권은 일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대한민국에 대해 또 다른 전쟁 위협을 늘어놓고 있다.
■ 태극기의 역사는 우리 군의 역사다
이 같은 주변의 정세는 우리 국민, 특히 군 장병들에게 태극기에 대한 맹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태극기가 한민족의 국기로 제작·반포된 것은 19세기 말 서구 열강과 일제의 한반도 진출에서 비롯되며 우리 군(軍)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당시 선박에 자국을 상징하는 깃발을 앞세우고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침략해 온 프랑스·미국·일본의 군대를 막은 것은 우리 군인이었다. 또 일본·미국과의 국교수립 당시 우리는 군인이 전권대표였으며, 태극기가 논의되고 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뿐인가? 이후 태극기의 역사는 바로 우리 군의 역사이기도 하다.
1907년 강제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됨으로써 우리는 일제에 의해 태극기를 빼앗기고 유린당하는 수모를 당했으나, 의병들은 태극기를 되찾기 위해 항거했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독립군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의로운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우리 군은 6·25전쟁 때 인공기를 앞세우고 남침한 북한과 중공의 침략자들을 물리쳐 태극기를 지켰고, 휴전 이후 단 한 치의 땅도 적의 손아귀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키면서 경제와 민주발전을 통해 오늘날 태극기가 세계 만방에 휘날리도록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렇듯 태극기는 132년 전 제작될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군(軍)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으며, 앞으로도 우리 군은 태극기 수호와 사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런 태극기와 그 역사를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외국인들도 매혹된 태극기
필자는 오랜 기간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국가홍보업무에 종사하면서 우리나라가 외국인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가 하는 데 관심이 많았고, 서양의 한국 관련 문헌과 사진자료들을 상당히 많이 수집했다.
이런 과정에서 태극기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들을 접하게 됐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82년 미국 해군부장관의 지시에 따라 항해국이 제작한 ‘해양국가들의 깃발들’이라는 세계 국기 소개 책자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최초의 태극기보다 몇 개월 앞선 태극기 모형이 실렸다.
이 책 속의 태극기는 국기가 아니라 선박의 국적을 표시하는 ‘선적기(船籍旗·Ensign)’로 표기됐는데, 17년 후 개정판(1899년)은 괘의 배치가 1882년의 선적기와는 다른 태극기를 싣고 국기(National Flag)로 표기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이 집필한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들 중 의외로 다수의 태극기 관련 자료가 존재한다. 1885년에 미국인이 집필한 책에 컬러로 인쇄된 태극 문양과 함께 태극기 설명이 등장하는가 하면, 1889년에는 태극기 도안을 책표지에 활용한 책도 발간됐다.
또 1894년에 한국을 여행한 오스트리아의 여행가는 돈을 지불하고 태극기를 구입하면서 겪었던 좋지 못한 경험을 자신의 한국 소개책자에 털어놓기도 했다.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한국관에 게시된 태극기에 매혹된 미국 북태평양철도회사의 중역은 회사 상표를 태극문양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1901년 이 철도회사의 홍보책자에는 태극기에 관한 세계 최초의 논문이라고 불러도 좋을 논문이 실렸다. (사진 ②)
또 이 논문은 ‘태극이야기’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1901년부터 1968년까지 수차례 발간되었다. (사진 ③)
한편 독일 황제 빌헬름 2세(1859~1941: 1888년부터 30년 동안 황제로 재위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폐위돼 네덜란드로 망명)는 1932년 손자가 미국 여행에서 가져다준 ‘태극이야기’라는 소책자를 보고 영감을 얻어 1933년 10월 네덜란드 도른에서 태극에 관한 강연회를 통해 논문을 발표했으며, 강연 내용은 1934년에 ‘중국의 태극’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발간됐다. (사진 ④~⑤)
주로 해외의 문헌과 사진자료들을 바탕으로 태극기를 새롭게 재조명하게 될 연재물 ‘세계 속의 태극기’가 아쉬움과 영광이 함께했던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국군 장병들의 이해를 돕고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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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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