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무기탄생비화

철모에서 미사일까지<105>철갑탄용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 -14-

입력 2003. 11. 25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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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11월 말, 연구팀은 텅스텐 중합금 신소재로 만든 평가탄을 준비,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의 총포탄약시험장 다락대로 향했다. 이미 겨울 문턱을 넘어선 듯한 다락대는 전방이라는 어감 그대로 차갑고 싸늘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시험 전날 밤, 연구팀의 막내 격인 이성 박사가 조용히 기숙사 방에서 나왔다. 청보랏빛 맑은 밤하늘에 도톰히 익어 가는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대전 무내미 골짜기에서도 이런 밤을 맞은 적이 적지 않지만 그는 평소 하지 않던 소원을 어린아이처럼 달님에게 빌어 보았다. ‘내일부터 우리의 젊음과 열정이 평가받는 날이다. 그동안 모두 이 하나를 위해 수년의 세월을 땀 흘려 고생했는데…. 그 많은 땀을 당신도 지켜 보았지요. 더 이상의 시간도, 기회도 없는 것 같네요. 내일도 당신을 환한 미소로 맞이할 수만 있다면.’

    이박사가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펴는 순간 저쪽 한편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김은표 박사였다. 이박사보다 5년 먼저 텅스텐 중합금 연구분야에 발을 내디뎠을 뿐만 아니라 이 결과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매달려온 ‘꼼꼼하기로 이를 데 없는’ 김박사 역시 시험 전날은 그렇게 마음이 설레었던 것이다. 이심전심으로 두 연구원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새로운 관통자의 시험평가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단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관통력 시험 방법은 ‘V50’ 테스트라는 것이었다. 일정한 포구속도로 탄을 발사했을 때 관통자가 시험용 철판을 뚫으면 속도를 낮추고 못 뚫으면 속도를 올리기를 반복, 범위를 좁혀 가며 50%의 완전 관통 속도를 평균적으로 구하는 방식이다.

    90년대 중반 텅스텐이 90% 함유된 텅스텐 중합금 소재로 105mm 날개안정 철갑탄을 개발할 당시에는 관통자의 나사 부위에 노치효과가 나타나 비행 중 파손되는 경험도 겪었지만 이번 시험평가에서는 그런 오류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V50 테스트와 더불어 최고 관통력 테스트 결과는 만족스러움을 넘어 놀라운 수준이었다. 당연히 군의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함은 물론 동일한 조건에서 기존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의 관통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무기체계 세계에서는 민간 생산업체가 주로 표현하는 식으로 기존의 제품에서 몇 % 향상시켰다는 것보다 최고수준의 무기체계와 대비해 몇 %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법이다.

    따라서 새 관통자가 철갑탄 분야의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열화우라늄탄의 관통력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과연 10% 안팎의 관통력 차이를 극복했는지의 물음에 대해 연구팀의 대답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시험평가 결과를 분석하면서 일부 미비한 점을 보완, 이듬해인 99년 4월 탄 설계팀과 업체·국방부 담당관 등이 참관하는 가운데 시행된 2차 시험평가를 넘치는 자신감으로 수행했다. 몇 발의 평가탄 사격시험을 통해 매우 우수한 관통력을 발휘했다. 열화우라늄탄과는 직접 비교할 수 없었지만 수치상으로는 유사한 위력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재연구란 핵심기술의 범주이고, 무기체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관통자는 철갑탄을 구성하는 한 부품일 뿐이기 때문에 새로 개발된 관통자가 탄(彈)이라는 체계에 적용해도 좋다는 ‘군 사용 가(可)’ 판정을 받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육군과 국방부 관계관들이 다락대에서 가진 최종 관통능력시험을 참관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험평가한 덕분에 가슴 졸이던 것과는 달리 7월 말 수월히 군 사용 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박사의 눈에서는 그때처럼 다시 한번 눈물이 핑 돌았다.

    연구팀은 연구결과를 정리, 학계에 논문으로 발표하는 동시에 미국·프랑스 등 외국에 특허로 등록해 독보적 기술임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2002년 국방부가 선정, 지급하는 연구장려금 ‘특1’을 핵심기술로는 최초로 받는 기쁨도 만끽하며 연구를 종료했다.

    “몇 mm나 관통하느냐고요?”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전차를 비롯한 기계화 차량에서 방패가 되는 장갑의 두께 등이 그렇듯 창(槍) 격인 철갑탄의 관통능력 또한 ‘극도의 보안’사항이니까.


    ■ 날개안정 철갑탄의 관통 과정

    그림①은 날개안정 철갑탄에 추진제가 결합된 모습이며, 포강 내에 장착된 것이 ②다. ③은 추진제가 연소되면서 생성된 에너지가 이탈피를 통해 탄에 전달되며 포구를 벗어나는 그림이다. 이때 탄이 포구를 벗어나면서 관통자를 감싸고 있던 이탈피는 세 조각으로 분리, 떨어져 나간다.

    관통자는 비행하면서 회전하지 않도록 설계(회전하면 운동에너지가 손실돼 결국 관통력이 저하된다)돼 있으며 비행 안정성은 관통자 끝에 부착된 날개(핀)에 의해 유지된다. 관통자가 목표물에 도달④해 관통하는 순간⑤⑥을 보면 뾰족한 관통자 첨두 부분이 뭉그러지면서 목표물을 뚫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때 관통자 역시 연속적으로 마모되면서 미세한 파편을 흩날린다.

    관통자가 목표물을 완전히 꿰뚫으면⑦ 관통자는 마모돼 아주 짧아지게 되고 목표물과 관통자에서 발생한 파편이 목표물 쪽으로 비산하면서 파편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신인호 기자 idmz@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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