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흥섭 박사가 스웨이징 머신(swaging machine)으로 관통자 재료를 냉간가공하는 과정에서 텅스텐 입자에 응력이 발생, 입자가 변형되고 이것이 셀프 샤프닝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연구팀은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체에 외력이 작용했을 때 그 외력에 저항, 물체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물체 내에 생기는 내력(內力)을 응력 또는 변형력이라고 한다. 이는 스웨이징 머신과 같이 기계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열 에너지에 의해서도 나타나므로 연구팀은 열처리 과정에서도 텅스텐 입자의 변형이 생겨날 것이라는 데 중지를 모았다.
연구팀은 검증에 돌입했다. 먼저 직경 50mm, 길이 500mm의 긴 막대 형태의 텅스텐 중합금 성형체를 수 개 제조한 후 (주)풍산의 대형 양산로인 연속로를 이용, 1차 소결했다. 이 성형체를 1차 스웨이징해 소성응력을 가한 후 1400~1485도로 변화를 주어가며 재소결(re-sintering)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열처리와 함께 강도를 높이고 응력을 부여하기 위한 냉간가공을 실시했다.
이같은 과정 중 소결온도, 열처리 및 냉간가공 횟수 등을 달리해 획득한 각각의 재료로 축소탄을 만들어 고속 충돌시험을 가졌다. 얼핏 별로 차이가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관통 깊이가 조금씩 차이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관통된 장갑판재의 직경이 종전보다 감소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는 관통자가 고속충돌할 때 관통자의 첨두(尖頭)가 덜 뭉툭해졌다는 것, 즉 국부적으로 생기는 크랙이 텅스텐 입자 내로도 발생해 스스로 깎여나가는(또는 벗겨지는) 셀프 샤프닝 현상이 보다 잘 일어났음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이같은 결과는 연구팀이 포항공대 이성학 교수팀의 연구용역을 통해 의뢰한 ‘텅스텐 입자와 형상이 파괴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모든 실험 결과를 종합했을 때 연구팀은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의 관통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 원소의 미세한 조직을 제어, 균열의 생성과 전파를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이를 ‘미세조직 제어기술’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이 제어기술에 의해 기존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와 열화우라늄 관통자의 관통성능 차이, 10% 정도의 그 차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다단열 처리기법 이후 우리의 관통자용 텅스텐 중합금 재료에 대한 연구개발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연구원들은 매우 고무됐다.
“개인적으로 저희 팀이 또 한번 해냈다는 기분에 마음이 일순 들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직 응용연구의 결과였을 뿐이죠. 실전에서 쓸 실용성 있는 관통자로 인정받기 위해 시험개발을 준비해야 했고 평가를 통해 인정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습니다.”(이성 박사)
그런데 시험개발에 착수한 1998년 시련이 찾아왔다. 97년 12월의 국가적 외환위기로 인한 IMF 사태가 국방과학연구소와 연구팀에도 파급된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전체적인 연구비가 삭감돼 일부 연구과제가 훗날로 미뤄지거나 중단되는 결정이 내려지는 가운데 연구팀의 관통자 시험개발 예산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충분치 않은 예산이 그렇게 깎이다니…”하면서도 연구팀은 비록 저예산일망정 연구를 계획대로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가용 관통자를 시험개발, 이를 효과적으로 평가할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지혜를 모았다. 무엇보다 관통력 시험 등 각종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 하나하나가 평가와 보완에 의미가 있도록 세심히 계획했다.
연구팀은 98년 11월 마침내 생산업체인 (주)풍산의 설비를 이용, 평가용 관통자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K-274 날개안정 철갑탄의 관통자와 동일한 규격이었다. 물론 새로운 관통자가 기존 K-274탄의 관통자에 비해 텅스텐 함유량이 90%에서 93%로 증가한 데다 소재에 적용된 기술도 다르므로 최상의 관통력을 얻기 위해서는 관통자의 길이 대 직경 비율 등 새 관통자의 규격은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 단계의 시험과 평가는 날개안정 철갑탄 전체의 관통성능을 평가·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관통자만의 성능을 기존 것과 평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K-274탄을 구성하는 요소〈그림 참조〉 중 다른 요소는 그대로 두고 관통자만 새것으로 바꿔 넣은 후 실제 사격해 최대 관통두께를 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새 관통자의 성능이 충분히 인정돼야만 새 관통자의 재질과 특성에 맞는 탄을 새롭게 설계하게 된다. 이 부분의 연구는 소재 연구팀의 몫은 아니고 탄 체계개발팀이 수행한다.
아무리 좋고 우수한 소재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이를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온전히 만들 수 없다면 소재는 결국 하나의 작은 구슬에 불과할 뿐 결코 진주가 될 수 없을뿐더러 전차탄 개발능력을 지니고 있는 다른 나라만 기분 좋게 해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백운형 박사 등 관통자 소재 연구팀은 탄 소재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필요한 기술이 탄을 설계하고 그 위력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저없이 동의했다. 또 탄을 개발하면서 이를 군에서 적용하기까지 수행해야 할 과정이 복잡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잊지 않고 강조했다.
〈신인호 기자 idmz@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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