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탄의 관통력은 물리적으로 볼 때 관통자의 무게(m)와 비행속도(v)의 제곱에 비례한다. 또한 관통자의 인장 강도(强度·strength·파괴되지 않고 견디는 힘), 밀도(密度·density·단위 부피당 무게), 인성(靭性·다른 힘에 파괴되기 어려운 성질) 및 연성(延性·가늘고 길게 늘어나는 성질) 등이 높아야 관통자가 목표물(장갑)과 충돌할 때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에 대한 1990년대의 세계적 연구 추세는 최근까지도 그러했지만 무겁고 길어야 관통력이 좋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텅스텐 중합금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텅스텐의 함량을 안정적으로 높이는 것이 일단 중요하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팀도 관통자 재료에서 텅스텐 함유율을 기존 90%에서 선진국의 관통자 수준인 93%로 높이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의 초점은 연신율과 충격인성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밀도를 높이는(텅스텐 함량을 증가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모든 자연계 현상이 그러하듯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요소가 나빠지는 경향(trade - off)을 나타내게 마련이고 이는 관통자 재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진〉은 텅스텐 중합금 봉(棒·bar)을 절단한 단면을 나타낸 것이다. 텅스텐 입자는 무게와 강도를 지탱해주며 니켈(Ni)과 철(Fe)로 구성된 기지상(基地相·matrix)은 연성·인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여기서 텅스텐 함량을 높이면 텅스텐 입자(粒子) 수가 많아지므로 인장 강도와 밀도는 증가하지만 기지상이 반대로 작아지므로 연신율(延伸率·elongation·파괴되지 않고 늘어나는 비율)과 충격인성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특히 텅스텐 함유량이 94% 이상이면 관통자는 목표물과 접촉할 때 쉽게 깨지고 90% 미만이면 휘어지기 쉽다.
“당시 시험장비로는 인스트론(instron)이라는 시험기와 간단하게 생긴 충격시험기뿐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온도조절을 위해 대전 시내를 뒤져가며 드라이 아이스를 구하기도 했고, 공작실의 밀링 같은 기계를 빌려 직접 시험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송흥섭 박사)
소결 및 열처리 조건 등을 변화시켜 연신율과 인성의 감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며 93%의 텅스텐 함유량을 가진 재료 개발에 성공한 뒤에도 2평 남짓한 실험실은 늘 뽀얀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5명의 연구원이 연구실에서만 피운 담배는 하루 5~6갑이었다. 그것은 마치 연구 중에 생긴 문제를 풀어가는 고민의 양과 같아 보였다.
90년 국과연에 입소, 막 연구팀에 합류한 이성(李城·42)박사는 날이 갈수록 그 양이 늘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에게는 담배 연기 자체가 고통일 수 있었지만 그것을 고통으로 여길 틈이 없었다(지금은 연구팀 모두 비흡연자다).
마침 연구팀은 텅스텐 중합금 소재를 열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계면(界面)의 변화 현상’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텅스텐 중합금을 소결 후 열처리하고 난 뒤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살핀 결과 텅스텐 입자와 입자의 경계를 이루는 계면 사이를 기지상이 ‘지렁이와 같은’ 모양으로 침입해 있는 것이었다. 밤마다 설전(舌戰) 아닌 설전이 벌어졌다. 이 현상이 왜 생기는지, 관통자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긍정적이라면 왜 긍정적인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연구팀의 관심은 높아갔다. 그때까지 어떠한 논문도, 어떠한 학자나 전문가도 이 현상을 명쾌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논의가 국과연의 관통자 개발 수준을 일약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다단열처리 공법을 개발하는 첫 단추가 되리라고는 그때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연구팀은 계면의 변화(지렁이 현상이라고 불렀다) 분석에 골몰했다. 먼저 텅스텐과 텅스텐 사이 계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텅스텐 중합금의 기계적 성질(충격인성과 연신율)이 나빠지므로 이 계면을 개선하기 위한 공정인 열처리에서 나타난 이 현상은 결국 계면의 면적을 줄임으로써 충격인성치를 높이는 데 긍정적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던 연구팀에 귀가 활짝 열리는 한 건의 보고가 업체로부터 날아들었다.
〈신인호 기자 idmz@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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