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길성 박사를 비롯한 소재분야 연구진은 풍산금속이 생산하는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의 원료분말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우선 분말 내에 함유된 불순물 또는 기타 다른 성분 등을 정밀히 조사했다.
원료분말에 극히 적은 양으로 존재하는 불순물은 전체 재료 물성(物性)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원소들이 많기 때문에 며칠간 철야를 거듭하면서 몇 가지 추가 실험을 가졌다.
텅스텐 중합금은 90% 정도의 텅스텐과 니켈·철이 포함돼 있으므로 이 원소 개개의 산화분말을 이용, 원료분말에 함유된 불순 원소 인(P)·황(S)·탄소(C)를 제거하는 방법과 습도가 존재하는 습수소를 이용해 불순물 제거 방안을 고안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원료분말이 불량이 된 원인을 밝혀내는 대성공을 거두며 연구분석을 종료했다. 이 과정에서 원료분말의 중요성과 불순물의 폐해를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었다.
다만 국방과학연구소 내에는 재료연구를 위한 연구환경이 무척 열악한 형편이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국내 대학들도 한 대 이상씩 보유하고 있던 주사전자현미경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한 대라도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원인분석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풍산에서의 원료분말 불량문제는 연구진이 지금도 풍산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풍산문제를 풀어가면서 텅스텐 중합금 연구에 대한 중요성과 인식이 높아졌고 이는 1988년 연구과제 선정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결국 풍산문제는 오늘날 국과연이 세계 수준의 관통자 재료를 낳는 의미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텅스텐과 같은 소재란 이렇듯 지극히 적은 양에 의해서도 무기체계의 성능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소재의 연구를 통해 재료성질을 개선한다면 무기체계의 생존성 증대, 구조물 경량화에 의한 기동성 향상, 내구도 및 수명의 증대,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능혁신을 구현할 수 있다.
무기체계에 소요되는 재료의 개발은 고도로 경험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연구수준이 필요하고, 체계개발에 앞서 미리 개발돼야 필요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재료 개발은 이 재료를 적용할 무기체계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추진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연구자적 관심만 가지고 접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보장을 하기 어렵고, 성공한다 해도 그 결과가 즉각 증명되는 것도 아니어서 연구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른 무엇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소재에 대한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투자가 용이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86년을 전후로 국과연에서는 국방소재에 대한 연구 붐이 일기 시작했다. 때를 맞춰 정부도 소재연구를 크게 강조하고 그 활성화를 꾀하고 있었다.
정부는 지금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같은 성격의 과학기술발전 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 국가발전을 선도할 주요 개발과제를 선정했다.
특히 국방(방위산업)소재 개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라는 임무가 국방부를 통해 국과연에 전해지고, 이어 87년 현재 기술연구개발본부의 전신인 전문소재연구개발부가 신설됐다. 소재연구 건물이 신축되고 실험실도 구색을 갖추는 모습을 보였다.
소재를 전공한 국과연 엘리트 연구원들의 큰 호응을 받는 가운데 현재 핵심적으로 소재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88년을 기점으로 대거 충원됐다. 국방소재 연구의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더불어 방탄재로서 장갑판재나 잠수함에 쓰일 선각재와 같은 재료개발과제 등이 이때 채택돼 연구에 들어갔다. 김성수(49·현 충북대 교수)박사, 노준웅(盧俊雄·48·현 기술연구본부 5부 1팀장)박사, 송흥섭(宋興燮·50)박사 등 분말야금 전문가들이 이미 시작한 관통자 소재에 대한 연구도 이때 독립된 연구과제로 선정됐다.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 소재 연구는 특히 K-1·K- 2·K- 3 등 한국형 기본화기 개발에 크게 기여한 백운형(白雲炯·54·현 기술연구본부 5부장)박사가 연구팀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개발의 기초를 더욱 확실히 다져 나갈 수 있었다.
〈신인호 기자 idmz@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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