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스텐 중합금(tungsten heavy alloy) 관통자가 국내에 상륙한 것은 1980년대 초엽이다. M - 48 계열의 전차에 쓰이는 전차탄을 제조하기 위해 재료제조기술 일체를 들여온 것이 우리나라 관통자 개발의 시작이다.
당시 미국의 케나메탈(Kenna - Metal)사로부터 기술을 도입하는 한편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풍산금속 공장에 설비를 갖추고 ‘K-241’이라는 탄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관통력 면에서 저급한 수준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첨단이었다.
대부분의 산업분야가 그러했듯 이 시기에 이 재료의 제조기술인 분말야금 분야의 기반은 취약하기 짝이 없었고, 더욱이 액상소결로 제조되는 탓에 공정이 매우 생소했다. 따라서 관련 제조기술은 초보적 수준이었고 이 분야의 관련 연구인력과 연구실적도 매우 적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역시 전체적인 연구 분위기와 연구중점을 복합적인 무기체계 개발에 두었고, 무기체계의 재질이 되는 소재(素材·material)를 연구하는 연구원들도 이에 따라 대체로 ‘체계’를 개발하는 부서의 한 파트에 속해 해당 무기체계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까닭에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10여 명의 연구원이 소재연구실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국과연은 우리나라 전장환경에서 대전차 철갑탄과 그 관통자가 무기체계로서 갖는 중요성을 일찍 인식했고, 이때부터 관련 연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인물이 천길성(기술연구본부장 역임·현재 퇴직)박사 등이었다.
마침 대한중석(주)이 강원도 상동광산에서 채굴한 텅스텐의 원광은 양이 많고 재질 또한 우수해 60년대 우리나라 수출품의 주를 이룰 정도였다. 때문에 텅스텐은 국내 재료학 분야에서는 중요한 자원으로 여겨져 왔고 또 그만큼 친근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상당히 매력 있는 광석이었다.
초창기 연구란 그때까지의 연구결과를 답습하거나 이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국과연의 천박사 등은 제시된 공정도에 따라 작업해도 재료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 관련 논문을 하나하나 소화해내며 관통자를 만드는 공정(소결)을 완벽히 이해해 나갔다. 독자개발을 위한 바탕을 차근차근 다져나간 것이다.
그러던 85년 중반께 국과연의 텅스텐 중합금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를 재촉하는 중요한 사태가 발생했다. 풍산금속에서 관통자를 양산하는 공정상에 문제점이 발견된 것이다. 최초 기술을 도입, 생산한 이래 이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관통자를 이루는 재료물성(物性)의 충격치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규정치를 만족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텅스텐 중합금은 분말야금법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다른 공정으로 제조되는 여타의 재료에 비해 제조공정상 변수가 많다. 따라서 일단 문제점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찾아내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생산업체 입장에서 보면 이 사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생산된 제품을 불량 처리하게 되면 막대한 금전상의 손실을 보게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군에 납품할 기일을 맞출 수 없어 군 전력에도 차질을 주게 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협조요청이 즉각 국과연으로 날아들었고, 천박사를 비롯한 소재 연구진은 모두 발벗고 뛰게 됐다. 연구원들은 생산공장으로 내려가 현장을 답사하고 현황을 청취했다. 그리고 각 제조공정을 다시 한번 정밀 조사했다. 특정한 분말의 로트(lot·한 무더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아 원료 분말에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모아졌다.
■ 미니 해설
분말야금(粉末冶金)
금속을 분말로 만든 후 여기에 압력을 가하는 등의 성형 공정을 통해 원하는 형태로 만들고, 이어 만들어진 성형체를 그 금속의 녹는 점 이하 온도에서 소결해 형태와 성질의 금속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함.
소결(燒結)
분말체(粉末體)를 적당한 형상으로 가압 성형한 것을 가열하면 서로 단단히 밀착해 고결(固結)하는 현상.
〈신인호 기자 idmz@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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