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 PD로서 여태까지 총 51편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자연 속에서 지냈다. 내 평생의 반을 자연을 벗하며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은 힘들지 않았느냐며 위로와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만, 오히려 난 자연이 베풀어준 맛과 멋을 한껏 즐긴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언급한 51편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 가장 아끼고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을 들라면 당연히 지난 2006년에 동해안 끝 고성에서부터 서쪽 끝 백령도까지의 야생 생태를 사계절에 걸쳐 제작 방송한 ‘DMZ는 살아있다’ 3부작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이자 아직도 총성이 울리고 있는 위험한 분단지역 DMZ! 서로 총을 들고 동족끼리 왕래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그런 민족적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에선 두루미가, 강에선 열목어가 힘차고 자유롭게 철책선을 넘나든다. 언제쯤 우리도 자손만대로 소중히 보전해주어야 할 소중한 이 땅을 저 하얀 두루미처럼, 잿빛 열목어처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일까? 평화통일 염원을 담아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한 지 어언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한 많은 철책선은 여전히 그렇게 가로놓여 있다.
필자는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한국의 작은 섬부터 각종 천연기념물의 보고인 생명의 땅 DMZ까지, 그리고 몽골·중국·러시아·아프리카 오지 등을 돌아다니면서 지구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가는 곳곳마다 장애물과 해충, 풍토병이 길을 막는 험난하고 위험한 곳이었지만 그곳의 자연은 늘 다정한 친구처럼, 포근한 엄마 품처럼 나를 받아주곤 했다.
자연은 공명정대하다. 누구나 이곳에서 태어난 생명체들은 저마다 주어진 삶을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오로지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평등하다. 잘났건 못났건, 재력·권력·학벌 이런 세속적인 비교가치와는 아무 상관 없이 누구나 저 스스로 자연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생명력과 건강을 줄 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고 멋진 자연 교향곡을 들려주니 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 것인가! 나는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자연을 벗하며 기록하려고 한다.
“리카(셰퍼드), 설(雪·샤모예드), 레이(보더콜리) 가자!” 매일 새벽 6시, 나는 집에서 키우는 개들과 앞산을 오른다. 산에 오르다 보면 어느새 동쪽 하늘에서 찬란하게 붉은 해가 떠오른다. 그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살아있으매 그 찬란한 빛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하며 오늘도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또 어떤 사람을 만날까 하는 설렘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리고 새벽의 산뜻한 기운과 온갖 꽃나무들의 향기가 어우러져 기분이 상쾌해진다. 설렘과 기대감 속에 시작하는 하루, 이것이 곧 삶과 건강의 원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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