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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소 병영칼럼] 우리 젊은이들을 믿어 보자

홍영소

입력 2014. 07. 0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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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동안 해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들의 연안실습 일부 구간에 세종대 국방시스템 공학과 학생들을 인솔하고 참가했다. 4년간 군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면 해군 장교의 길을 걷게 되는 학생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진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함정에 오르면서 침실 배치와 함 소개 등의 순으로 진행된 첫날부터 학생들의 눈빛은 새롭게 변해 갔다. 사관생도들과의 첫 만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고 충남대 해군학과 학생들과는 동지의 끈을 이어갔다.

항해실습, 인명구조 훈련, 전투배치 훈련은 장차 해군 장교로서 수행해야 할 임무에 자신감을 부여했고 좁은 공간의 침실은 양보와 희생을 실천하는 교육의 장이 됐다. 지시사항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목소리와 복명복창하는 자세에서 어엿한 청년 장교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해상 상태가 좋지 않아 직접 상륙은 할 수 없었지만 독도를 바라보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눈물을 훔쳐내던 모습에서 그들의 뜨거운 나라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얼마나 걱정했던가? 군인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 하나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업에 시달리다 보니 정작 군인의 자세는 영 보이지 않아 실망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이번 실습 훈련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염려가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첫날부터 달라진 그들의 모습에서 역시 군인의 길을 걸을 사람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당시 수나라ㆍ당나라와 전면전을 치러 이길 만큼 강국으로서의 위명을 떨쳤던 것은 국민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의 강건한 상무정신 때문이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강한 젊은이를 길러내는 화랑도라는 교육시스템의 결과였다.

우리나라는 고려 초까지도 이와 같은 상무 기질과 기풍이 간직돼 왔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그런 기질과 기풍은 사라지고 젊은이들은 문약에 흐르고 말았다. 그러다 나라가 쇠퇴하면서 결국 일제 침략으로 국권을 강탈당하기에 이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최후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승리한 전투가 워털루 전투였으며 이 전투를 치른 연합군 지휘관이 영국의 명장인 웰링턴 장군이었다. 그는 나중에 말하기를 “워털루의 승전은 이미 이튼의 교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튼은 영국의 학교 이름으로 요컨대 이는 어렸을 때부터 받아 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에 해군사관생도와 세종대 그리고 충남대 학생들로 함께 이뤄진 연안실습을 보면서 웰링턴 장군과 같은 위대한 지휘관들이 각 학교 교정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8박 9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들이 보여 준 모습은 적극적이었고 부여된 임무를 잘 수행했으며 두 번의 지시가 무색할 정도로 스스로 따르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조성돼 있었다. 비록 사관학교와 대학이라는 각각의 교육 장소가 다를지라도 우리나라 미래 안보의 한 축으로 성장할 사관생도와 군 장학생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함께 큰 기대를 걸어본다.

세종대 교수ㆍ예비역 해군대령  홍영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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