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건설에 무엇보다 해군이 중요하다.” 손원일(孫元一) 제독이 1953년 6월 30일 참모총장직을 이임하는 자리에서 유시한 이임사 일부분이다. 이렇게 손원일 제독은 해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5대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손 제독의 국방부 장관 취임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사실 손 제독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국방을 맡아 달라는 권유를 받아온 터였다. 하지만 손 제독은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국가와 국방과 해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손 제독이 국방장관의 직책을 거부한 것은 국방보다 해군이 더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국내 발전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기에 무진장한 바다를 개척하고 바다에서 발전한다면 국내는 자연적으로 따라오고 위신을 날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따라서 손 제독에게 해군은 국가의 어느 기관보다 중요하게 인식됐고, 해군력을 건설하는 참모총장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쟁 이후 국가 상황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은 대통령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손 제독은 왜 국방보다 해군의 가치를 중시한 것일까? 단언컨대 그것은 해양력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던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해 중앙대학교 항해과에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의 기록을 보면 “바다에는 미래가 있다. 언젠가 나라를 되찾는 날엔 해양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해양관은 중년기에 이르러 더욱 구체적이며 확신에 찬 성격으로 발전한다. “해양으로의 진취성이 강한 민족은 융성하고 약한 나라는 쇠퇴의 길을 밟아 왔다는 사실은 과거의 세계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다. ‘해양을 제패하는 자는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은 이 사실을 갈파한 것이다.” 1954년 4월 5일 발행된 ‘대한민국해군사’ 제1집의 서문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으로 손 제독의 해양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기록이다.
손 제독이 19세기 미국의 대해양전략사상가인 마한(Alfred Thayer Mahan : 1840~1914)의 명언을 책의 서문에 담은 것은 예사롭지 않다. 해양전략사상가다운 식견과 예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제독의 해양전략 사상은 이후의 해군력 건설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직하다. 2대 참모총장으로 취임한 박옥규(朴沃圭) 제독은 손 제독의 해군건설 이념을 그대로 계승, 함정제일주의를 표방하고 대해군건설에 매진했다. 50년대 중반~60년대까지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다수의 함정은 이러한 전략 사상적 배경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넓게 보아 90년대에 추진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대양해군 건설 역시 손 제독으로부터 이어지던 해양전략 사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13년 해군 창설일에 해군력 중심의 국가건설을 지향하던 해양전략사상가 손원일 제독의 깊은 혜안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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