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시 북한은 “우리 공화국을 노린 침략전쟁연습”이라며 “초강경 대응, 조선인민군 결전태세돌입, 핵억제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제3차 핵실험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을 통째로 날려 보낼 특별행동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며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전쟁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면서 제2조선전쟁을 공식적으로 거론했다. 최고사령관 김정은도 이미 “조국통일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명령을 전군에 하달했으며, 이를 위해 작전계획을 검토하고 최종 수표(서명)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는 도발의 시기만 남았다는 얘기다.
당시 국내 일부 좌파성향 단체들도 북한의 주장에 편승해 을지연습이 “한반도의 핵전쟁 위험성을 높이고,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과 미국이 을지연습으로 한반도를 전쟁분위기로 몰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을지연습은 북한의 생트집 없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며 군사적 대응조치를 언급해 가며 한반도 위기 지수를 끌어올리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8월 20일 대변인 담화로 박근혜 대통령이 을지국무회의에서 했던 “평화롭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는 발언을 비난했지만 박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원칙적 입장 표명에 그쳤다. 오히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지금은 평화가 중요한 시기이고, 북한은 휴전 이후부터 평화협정으로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이처럼 한미연합 군사 연습 기간에 이례적으로 평화를 강조한 것은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와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 등 모처럼 이뤄진 남북 간 화해분위기를 깨지 않겠다는 뜻으로 파악된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식량난 해결과 통치자금 확보를 위해 외부의 지원이 시급하고, 한국 정부의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을지연습은 국가비상시를 대비해 민·관·군이 합동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어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전쟁연습이고, 북침전쟁연습’이라고 훈련의 본질을 호도하는 세력들은 훈련을 핑계로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거나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등 또 다른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을지연습에 대한 북한의 비난 자제에도 불구하고 군사대비태세를 늦춰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다가도 어느 날 느닷없이 군사도발을 자행하는 북한의 행태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은 통상 대화가 결렬된 후에 일어났다. 최근 김정은의 동선(動線)도 주목을 끈다. 지난 2009년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된 김격식 대장이 4군단장으로 가고, 그 부대를 김정일이 방문한 후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일어났다. 2013년 5월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된 현영철 대장이 5군단장으로 좌천되고, 오성산과 가칠봉을 관할하는 그 부대를 김정은이 근래에 방문했던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정전(停戰)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도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방어적 을지훈련에 유감을 표명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아직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육군종합행정학교 교수 정치학 박사
윤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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