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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을 주도한 박정희(가운데) 소장. <자료 사진> |
내가 5군단 인사참모로 있던 1961년 5월 16일, 이른바 5·16 군사혁명이 발생했다.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대 안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하루 전인 15일은 원주 1군사령부 창설기념 행사가 열린 날이었다. 나는 그날 운동대회의 주무참모로 5군단 선수들을 인솔, 원주로 와 있었다.
예하 부대 지휘관들이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가기 위해 군사령부 비행장에 모여 있는데 3군단장 최석(중장 예편·작고) 소장이 처음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더군 … 기관총을 여기저기 놓고 드르륵 쏴 죽여야 돼!”
부정부패 만연 `올 것이 왔다' 생각
당시 나는 젊은 혈기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정의파로서 당시의 정치상황과 시국의 흐름, 사회현상 등을 볼 때 5·16혁명이 부득이했다고 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운전기사·노동자까지 판문점에 가서 회담해야겠다고 나서는 판이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영관급 장교 간에는 쿠데타설이 심심치 않게 퍼져 있었고, 찬반토론도 더러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소식이 별로 큰 충격은 아니고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또 혁명주체 세력들이 내건 혁명공약에 동감했다. 그대로라면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당시의 혁명공약을 다시 살펴보자.
1.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쳤던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해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군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7.(민간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이 같은 혁명공약대로라면 무엇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과업 성취 후에 민간인에게 정권을 넘겨 준다는 데야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자문자답하면서 일단은 5·16 군사혁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이후 실망스러운 일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나는 5·16 혁명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실망은 혁명주체라는 중령급, 심지어 예비역에 편입된 중령까지 일시에 장군으로 두 계급씩 특진을 시켰다는 사실이다. 공(功)이 있으면 훈장이나 표창을 주는 것이며 계급은 부대지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같이 혁명에 동참했다고 하여 두 계급을 올려 준다는 것은 군대의 신성한 계급질서를 무시한 처사라고 단정짓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 동참 이유로 계급질서 무시
장군은 그 국가의 위기를 구출하는 영웅이고, 어느 나라에서나 존경의 대상이 되는데 중령이 느닷없이 장군이 되다니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월권을 자행한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의 드골은 일성(一星) 장군으로서 영광된 프랑스를 재건했다. 그의 권한으로 몇 개 더 달 수 있는 별을 하나도 더 달지 않고도 오늘날 프랑스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엇인가. 일부 권력의 시녀인 장군들이 이 땅 대한민국에 나타나면서 ‘똥 장군’이란 유행어까지 생기게 됐다. 실례를 들어 보자. 김형욱(炯旭) 중령은 5·16 직후 두 계급을 특진해 육군준장으로 예편했다. 그 후 중앙정보부장이 돼 권력을 휘두르다가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조국의 지도층을 매도했던 그 사건, 그 사람이 한 나라의 장군일 수 있겠는가?
<박정인 前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정리=김준범 언론인 bal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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