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육군본부 일반참모들은 모두 장군이었다. 그러나 그 휘하 각 병과장 가운데는 아무도 장군이 없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령 G-4(군수) 휘하에는 공병감·병기감·병참감·통신감·수송감 등 많은 병과장이 있었는데, 10만에 가까운 병력을 가진 공병감의 계급은 대령이었다. 병력으로 공병에 버금가는 수송과 통신병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대령급 병과장 美와 업무협조 애로
그런 병과의 장들이 대령급이어서 미군과의 업무협조에 문제가 많았다. 우리 육군 안에서도 사단장 같은 일선 지휘관들과의 관계에 적지 않은 애로가 있었다. 군대는 계급이다. 아무리 많은 병력을 통솔해도 지휘관 계급이 낮으면 다른 부대 지휘관들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 휘하 참모와 부대장들 계급도 따라서 낮아져 병과 구성원 모두의 사기 문제로 연결된다.
나는 이들을 모두 장군으로 승진시키기로 결심했다. 첫 케이스로 각 참모부장을 보좌하는 참모부 차장과 공병감 같은 주요 병과장 10여 명을 준장으로 진급시켰다. 먼저 미군과의 협조를 거쳐 국방부 장관을 설득했다. 그다음에는 이승만 대통령 재가 차례였다.장군 진급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속하는 일이다. 당연히 대통령도 생각이 있는 법이다.
우선 진급대상자에 개인적인 호오(好惡)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내가 상신하는 인사안은 물리치지 않고 재가해 주었다. 나는 병과장급 진급인사 상신을 다달이 몇 건씩 올렸다. 그렇게 해서 몇 개월 사이에 각 병과장이 모두 별을 달게 됐다. 다 아는 대로 장군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에 비견된다.
‘장군이 되면 몇십 가지가 달라진다’는 세상의 통념은 사실이다. 우선 전속부관이 생기고, 집무실과 자동차·직책·월급 등등의 여러 면에서 대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따른다.어떤 군인이 장군으로 진급해 자기 집무실 문에 “하인(何人)을 막론하고 이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할 것”이라고 써 붙였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는 얘기가 있다.
장군들 사이에 떠도는 유쾌한 일화다. 아들을 찾아왔던 아버지가 “너 이놈! 이 늙은 애비도 노크를 하란 말이냐” 하고 일갈했다고 한다.미군도 마찬가지다. 미군 장성에게는 전용 쿡(요리사)이 따를 정도다. 장군식당이 따로 있는 것은 우리와 같다. 장군 구별이 제일 엄한 곳은 영국 군대다. 장교와 준사관은 같은 곳에서 식사할 수 있어도, 장군은 일반 장교와 같이 먹지 않는다.
아무튼 진급인사의 효과는 컸다. 다들 열성적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런 결심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나는 참모진으로 과거부터 나와 손발을 맞춰 온 몇몇 사람을 기용했을 뿐, 다른 참모는 손대지 않았다. 일반참모부의 위관급 비서요원도 모두 유임시켰다. 문형태 비서실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 왔을 때, 나는 그들이 전임자를 잘 보좌했는지를 물었다. 문 실장은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모두 유임시키라고 지시했다.
진급 효과 '톡톡' 모두 열심히 일해
육군총장은 군의 최고 선임자로서 국방부 장관을 통해 군사 면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자리다. 계엄령이 선포된 전시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통치권도 일부 수행해야 했다. 육군 예하 12개 사단을 비롯한 전후방 각급부대의 보급과 작전지원 업무 이외에, 참전 16개국 군대와의 업무협조도 적지 않은 일이었다.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정리=문창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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