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통일시대의 통합 국방전략 필요…첨단 과학군 육성 서둘러야”

이석종

입력 2018. 05. 27   17:51
0 댓글

[인터뷰] 우석대 총장 취임 100일 장영달 전 국회 국방위원장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일했고, 14대부터 내리 4선을 한 장영달 전 국회의원이 지난 2월 12일 우석대학교 총장으로 임무를 시작했다.

 

장 총장은 취임 이후 민주화운동과 의정활동을 통해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석대를 높은 인격 형성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학으로 이끌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장 총장은 군사학과·군사안보학과·국방기술학과와 국방정책대학원 등 국방 관련 학과와 대학원을 통해 우리 군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동철 국방일보 편집인이 취임 100일(22일)을 맞은 장 총장을 만났다. <편집자>


-우선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 총장에 취임하신 것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취임 100일을 맞은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지난 100일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우석대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고 구성원들의 노력하는 모습들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피나는 노력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기도 합니다. 전국의 4년제 대학 200여 곳이 해마다 똑같은 경쟁에 나서야 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대학 운영이란 게 전쟁처럼 치열하구나’ 하는 생각이 깊어집니다. 고생하는 교직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기도 했습니다.”

-총장 취임 이후 중점적으로 추진하신 사업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인격이 형성되지 않은 천박한 인간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국가나 사회를 좀먹습니다. 그래서 높은 인격 형성 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어렵게 석좌교수 세 분을 모셨습니다. 다산철학의 일인자로 손꼽히는 박석무 석좌교수, 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법학부 교수로 세계적인 인권운동가이자 민주·평화운동가인 서승 석좌교수, 전 육군참모총장 김요환 석좌교수 등입니다. 박석무 석좌교수를 모신 것은 기존 43개 학과의 교수와 직원들이 훌륭하게 수행하는 역할에 다산의 이상적이면서도 실용주의적인 인격을 추가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다산철학은 우석대를 설립하신 우석 서정상 박사의 건학철학과도 놀랍게 맞아떨어집니다. 이런 다산인격 위에 43개 전문지식의 높은 탑이 세워질 것입니다. 또 우석대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지도자 중 한 분인 고 김근태 국회의원의 이름을 딴 ‘김근태연구소’를 오래전부터 운영해 왔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군사관계 학과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오는 10월 17일에는 서승 석좌교수와 역사교육과 조법종 교수 주도로 ‘동아시아평화연구소’가 창립됩니다. 동아시아평화연구소에서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시작된 화해협력정책이 결국 어떻게 항구적인 동아시아의 평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연구를 수행하게 됩니다. 훌륭한 인격의 바탕 위에 깊이 있는 민주·평화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이런 구조 속에서 어떻게 대한민국 공동체를 여하한 변화 속에서도 굳건하게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총장으로서 이러한 학문과 연구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43개의 전문 분야가 활짝 꽃피울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군사학과·군사안보학과·국방기술학과와 국방정책대학원 등 우석대가 운영 중인 군사 분야 학과들의 비전과 진로를 설명해주십시오.

“우석대의 군사학부 출신 학사들은 거의 100% 장교로 임관하고 있습니다. 총장으로서 무척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같은 대거 합격의 배경을 알게 된 뒤부터는 해당 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습니다. 우석대의 군사 학부 교수들의 노력과 헌신은 참으로 남다르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국방정책대학원에는 현역 장교들과 직장인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바쁘고 특수한 신분 때문에 강의도 토요일에 몰아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휴일까지 반납하고 주경야독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방정책대학원을 졸업하는 장교들이나 공직자들의 면면을 보면 국가안보 분야에 우수한 실력자들로 손색없는 자격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늘 자랑하고 싶은 대목입니다.”

-우석대의 장점과 미래 비전을 설명해 주십시오.

“우석대는 기초체력이 강한 대학입니다. 설립자이신 우석 서정상 박사처럼 매사가 실용적이고 치밀하게 뿌리내려진 게 강점입니다. 그런 저력이 어려운 환경에도 해마다 70%가 넘는 취업률을 달성하는 밑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입사가 어렵다는 대기업들도 우석대 출신들에게 눈독을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먼저 ‘사람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비전은 높은 인격에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우석인을 줄기차게 양성해 밝은 대한민국 건설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석대가 자신 있게 남북통일을 열어가는 선두에 서게 하고 싶다는 꿈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우석대는 분단의 교육이 아니라 통일시대의 아름다운 민주·평화 조국을 꿈꾸며 원대한 마음으로 모든 교육의 이정표를 넓혀갈 것입니다.”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1만여 명에 달하는 우석 가족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총장이 되고 싶습니다. 학교를 떠나는 날에는 마지막 학생 한 명까지도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총장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총장이 되고 싶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기 의견이 관철되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충분한 소통만 가능하다면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은 성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삶의 높은 가치라는 생각입니다. 소통과 대화를 통해 학생들은 물론 교수와 직원 모두가 ‘구성원들의 창의적 역량이 최고도로 발휘될 수 있도록 심부름을 참으로 열심히 했던 총장이었다’고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총장님의 군대 생활이 궁금합니다.

“1969년 7월에 경남 창원의 육군39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무척 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적이 좋았던지 교육대 조교로 남으라는 제의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교 제안을 거절하고 강원도 홍천에서 자동차 정비병 교육을 거쳐 5사단 소속이면서도 3사단 전방의 산 중턱에 위치한 포병부대에 배치됐습니다. 겨울이면 너무 추웠고, 최전방의 얼어붙은 눈밭 위로 들려 오는 처량한 북한의 대남방송도 새벽 보초를 서면서 원 없이 들었습니다. 수송부 군기는 무척 엄격합니다.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병사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버텨냈던 군대생활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군대생활은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전역을 1년도 남기지 않았던 병장 시절에 자원해서 베트남에 갔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도피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시 본부중대 실무자에게 몰래 ‘베트남 차출 오면 꼭 보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운 좋게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뤄진 베트남 파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가를 배웠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는 이성이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전쟁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양민 학살이 우려되고, 젊은 여성은 전쟁터의 대표적인 희생물이 돼갑니다. 상식적으로 정상이라는 게 존재하지 못하는, 비정상의 일상화입니다. 모든 것들을 죽이고 파괴하고 인간이라는 기본가치를 설명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는 비극의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시는 남북한의 전쟁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힘들었던 군 복무가 총장님의 인생에 도움이 된 점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군대생활은 힘은 들지만 돈 주고도 경험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체험하는 인생교육장이라는 생각입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내셨습니다. 당시 기억 나거나 보람됐던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국회의원 시절 7년 이상의 시간을 국방·안보와 관계된 상임위원회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숙한 정치인으로 활동하려면 우선적으로 국방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당시 지역구에는 예비군 초소도 하나 없었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무모한 행동이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국방위를 오래 지켰고 상임위원장도 국방위원장만 고집했습니다.

 

이라크 전쟁터에도 남들은 위험한데 뭐하러 가느냐고 했지만 우리 자식들이 파견돼 있는 현장이 궁금해서 제마부대를 방문했고, 자이툰부대에도 다녀왔습니다. 소위 병역실명제라 불리는 고위층의 병역사항 신고를 법제화했고, 모든 병사의 생활관을 침대화하는 사업에도 앞장섰습니다. 첨단 과학군 육성으로 질적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던 일도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얼마 전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종전 선언 이후 우리 군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북 간 종전이 선언되면 우리 군 지휘부와 북한군 지휘부 사이에 지속적인 대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나브로 동서남북의 통합적인 작전개념이 논의될 것입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도발하고 있음을 볼 때 유사한 상황들을 설정하며 북한과 소통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의 전력은 비대칭적 전략무기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몹시 오래된 장비들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과 요인들을 서로 인지하면서 신뢰를 높여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휴전 상태를 끝내고 종전이 선언되면 그때부터 오히려 더욱 광범위한 전방위 국방개념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휴전선만 지키자는 형식이지만 그때 가면 한반도 전체를 방어해야 하는 국방이 되는 것입니다. 한반도 통합국방전략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첨단 군대를 육성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격려 말씀을 해주십시오.

“군 복무 기간이 많이 짧아졌고 앞으로도 조금 더 짧아질 것입니다. 그럴수록 ‘군대에서 썩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키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매일 기분 좋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대장·중대장들과 가끔씩 팔씨름을 해보며 군 생활을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교들은 갈수록 병사들의 기분 좋은 병영생활을 돕기 위해 이기는 척 져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고마워하며 상관을 존중하고 부하를 사랑하며 힘든 훈련도 조금은 즐거워지리라 확신합니다. 제대하고 나면 돈을 아무리 바친다 해도 군에서 다시는 받아주지 않는 추억의 군대가 될 것입니다.”

정리 = 이석종 기자

사진 = 조종원 기자

 

장영달 우석대 총장은?

 

민주화 운동에 굵직한 족적

화해와 양보의 미덕 통한 탁월한 리더십 


장영달 우석대 총장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주고와 국민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유신반대 민청학련 사건과 긴급조치 위반으로 7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92년 14대를 시작으로 17대까지 전북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과 정치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면서 체득한 화해와 양보의 미덕을 통해 탁월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석종 기자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