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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심일 소령의 공적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

입력 2017. 05. 0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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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심일 소령의 주요 의혹에 대한 사실확인 결과와 설명


옥산포 전투와 적 자주포 3대 파괴

‘도망’아닌 정상적 전술적 조치로 평가

증언·피아 공식문서·현장 답사로 확인

 

소양교 지역전투 유무(有無)

문서·증언통해 당시 새벽부터 교전

동료 전우와 북 자주포 3대 파괴

 

美 은성무공훈장 추천서 신뢰성

미 최상위 훈장으로 공적 없었다면추천서 작성해 주었을 리 만무

심사 거쳐 한국은 태극무공훈장 수여

 

 

 

 

 

 

국방부, 위원회 구성… 약 7개월간 검증

2016년 6월 중순 일부 언론에서 6·25 전쟁 초기 춘천지구 전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 심일 소령의 공적이 사실과 다르며 그가 ‘조작된 영웅’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은 점차 심 소령이 세운 공적의 진위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고, 일부 참전 용사, 연구자, 언론 등에 의해 확대됐다.

특히 본 사안을 조사하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와 육군군사연구소가 심 소령의 공적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제기하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전쟁 초 용맹을 떨친 인물로 추앙을 받았던 심 소령은 고(故) 강재구 소령과 함께 육군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적에 제기된 의혹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명확하게 검증돼야 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9월 심 소령의 공적에 대한 역사적 사실 규명을 위해 ‘고 심일 소령 공적확인위원회’를 구성, 약 7개월 동안 검증활동을 진행했다. 위원회는 군사편찬연구소와 육군군사연구소에서 각각 추천한 인원을 포함해 총 7명의 군사사 전문가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공적심의회의(14회), 현장답사(5회), 생존자 증언 청취(2회), 공청회 등을 통해 전투상보, 보고서, 상훈기록, 포로심문서 등 각종 문서와 과거 증언록 등을 철저하게 검증했다.

위원회가 심 소령의 공적을 조사 및 확인하는 과정에서 파악한 핵심 쟁점은 6월 25일 옥산포 전투에서의 공적 의혹과 6월 26일 소양교 전투에서의 공적 의혹, 태극무공훈장 수여 관련 조작 의혹 등이었다.



먼저, 옥산포 전투에서 제기된 의혹은 “심 소령이 적에게 대전차포를 넘겨주고 도망갔다”와 “심 소령이 직접 적 자주포를 파괴하지 않았다” 등이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당시 심 소령과 지휘관계에 있었거나 함께 전투를 했던 증언자(연대장 임부택 중령, 중대장 송광보 대위, 대전차포사수 오봉환 하사 등)들의 증언기록과 당시 전투상황이 기술된 피아 공식문서(6사단 전투상보, 라주바예프보고서 등), 전투현장 답사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이를 통해 심 소령의 행동은 ‘도망’이라기보다는 급박한 전투상황에서 차후 진지로 이동하기 위한 정상적인 전술적 조치로 평가했다. 또 옥산포로 철수한 심 중위의 대전차포 소대가 적 자주포 3대를 파괴한 사실도 확인하였다. 심 중위의 소대가 옥산포 북방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함에 따라 제16포병대대의 105㎜ 포탄 5000여발이 안전하게 소양강 남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춘천지구 전투에서 아군이 혁혁한 전공을 세울 수 있었다.

소양교 전투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소양교 지역에서 전투가 없었다”와 “6월 26일 전투무공으로 수여받은 미 은성무공훈장 추천서는 신뢰성이 낮다” 등이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태극무공훈장 공적서 및 미 은성무공훈장 추천서를 포함한 피아 기록문서(6사단 전투상보, 무르찐 보고서, 북한군 제262부대 훈장수여장 등)와 다수의 참전자 증언(16포병대대장 김성 소령, 8중대 화기소대장 안태석 소위, 대전차포 사수 오봉환 하사 등)을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이날 이른 새벽부터 소양교 지역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이 있었으며 심 소령이 동료 전우인 박철원 대위, 김순화 이등중사, 윤봉국 이병과 함께 북한군 자주포 3대를 파괴한 공적을 확인했다. 특히 미 은성무공훈장은 미국이 전투 중 탁월한 공적을 세운 외국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상위 훈장으로 초급장교인 심일 중위가 특별한 공적이 없었다면 추천서를 작성해 주었을 리가 만무하다고 판단했다. 또 미 육군 관련 부서에 조작여부를 확인한 결과 ‘심의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도 발견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심 소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는 과정이 조작됐다는 의혹은 “당시 연대장이 심 소령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훈장을 상신했다”, “ 심 소령이 1950년 12월까지 전투에서 훈장을 받을 정도의 무공을 세우지 못했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위원회는 훈장관련 문서(태극무공훈장 심의서, 육본공심 제1호)와 미 은성무공훈장 추천서, 그리고 당시 전투상황 등을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 “아들 셋을 나라에 바친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서 공적을 조작해 훈장을 줬다”는 의혹 제기는 대부분 과장되거나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태극무공훈장을 상신한 시점(1950년 10월)이 심 소령의 부모가 훈장을 부탁하기 위해 연대를 방문했다는 시기(1951년 1·5월)보다 이른 시기임을 감안할 때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훈장을 상신했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또 심 소령에게 수여된 태극무공훈장은 적법한 심사절차를 거쳐 정당하게 수여된 것임을 확인했다. 특히 국무회의에서 상신된 18명 가운데 9명만을 수훈자로 선정했는데 이 가운데 심 소령의 직속상관인 김종오(준장) 사단장과 임부택(중령) 연대장이 부결된 것은 심 소령의 공적이 훨씬 더 높게 평가받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결국 소양교 전투에서 보인 심 중위의 뛰어난 공적을 토대로 미국은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했고 한국은 춘천지구 전투와 충주, 음성, 문경, 안계 전투에서 거둔 전과를 인정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위원회는 이런 검증 과정을 통해 6월 25일 2시 경 옥산포 지역에서 심 소령이 대전차포 소대를 지휘해 적 자주포 3대를 돈좌시킨 후 이들에 접근하여 휘발유병과 수류탄 등으로 파괴했고, 6월 26일 10시 경 소양교 지역에서 직접 대전차포로 적 자주포 3대를 파괴하는 등 공적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임을 최종 확인했다.

6사단이 춘천지구 전투에서 수행한 성공적인 작전은 전쟁 초기 북한군의 작전계획에 심대한 차질을 초래했다. 북한군이 춘천 조기 점령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2군단장을 강등 및 교체하고 2사단장과 12사단장을 경질한 것은 그 의미를 재확인시켜 줬다.

6사단이 SU-76 자주포를 앞세우고 춘천을 신속하게 점령하려는 북한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냄으로써 서울 동남방으로 진격해 국군의 주력을 포위 격멸하려던 북한군의 계획은 좌절됐다. 이 전투로 국군은 한강 방어선을 형성해 유엔군이 증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전쟁의 큰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춘천지구 전투·충주·제천·안계에서 큰 공적

27세였던 심 소령은 임관한 지 13개월 만에 남침하는 북한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소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출동했다. 그는 전쟁 초기 춘천지구 전투에서 큰 공적을 세웠으며 충주, 제천, 안계 등지에서도 여러 공적을 세웠다. 그러던 중 1951년 1월 말 강원도 영월에서 적과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과정에서 심 중위는 한 번도 훈장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훈장을 받은 줄도 모르고 전사했다.

위원회는 6·25 전쟁의 영웅인 심 소령의 명예가 더 이상 실추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번 최종 검증작업이 군의 명예와 신뢰를 바로세우는 표본이 되기를 소망한다.


<고(故) 심일 소령 공적확인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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