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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7,355명 잊지 않겠습니다 그 얼굴, 그 아픔

박지숙

입력 2016. 08. 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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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가다


국방일보는 71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방저널과 함께 국민에게 일제 강제동원의 참상을 널리 알리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문을 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찾았습니다. 생생한 역사관 탐방기를 통해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강제동원의 실체를 깨닫고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부산시민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택시기사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며 몇 번을 확인하고는 결국 내비게이션을 작동했다. 부산역에서 15분 정도를 달려 남구 대연동의 한적한 주택가 언덕길을 지나자 역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건물. 하지만 한참을 지켜봐야 오가는 사람을 발견할 만큼 주변은 한산했다. 아직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했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널리 알려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발걸음을 재촉해 전시관으로 향했다.



 

 

 

솟구치는 분노와 슬픔을 누르고 두 눈 크게 떴다. 일제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은 ‘기억의 터널’이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조상들의 그림자를 따라 일제 강제동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분노와 슬픔을 가슴에 묻고 두 눈을 크게 뜨고서.

일제 강제동원이란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침략전쟁을 벌이기 위해 실행한 인적·물적 동원 및 자금통제를 말한다. 강제동원은 당시 일제가 지배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행됐다. 본격적인 강제동원은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다음 해인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만들면서 자행되었다. 국가총동원법은 의회의 동의 없이 일본 본토와 식민지, 점령지 등 모든 지배 지역의 사람과 물자, 자금을 전쟁에 총동원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광범위한 권한을 위임한 전시통제의 기본법이다.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모법(母法)으로 국민징용령 등 각종 강제동원 관련 법령을 제정·시행했다. 일제는 한반도를 준(準)전시 상태로 만들고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다. 일본 국가권력과 기업은 한반도의 인력과 물자를 의무적인 ‘공출(供出)’이라는 명목을 씌워 제멋대로 빼앗아 갔다.

조선인의 강제동원 피해 규모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이는 당시 연합군이 작성한 명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신고받거나 조사한 통계자료 등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동원 주체인 일본이 작성한 통계를 분석해보면 최소 782만7355명(우리말 이름과 일본어 이름 중복 포함)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자료는 일본이 축소·은폐했을 가능성이 크고 특히 ‘위안부’ 피해 등 반인륜적 전쟁 행위에 대한 명부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어 추산조차 어렵다고 한다.



 

 

 

강제동원 조선인 군인·노무자·위안부 등 피해자·후손이 남긴 사진 유품 전시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는 당시의 아픈 역사가 군인과 군무원, 노무자, 위안부에 이르는 피해자와 그 자손이 남긴 사진과 유품 등을 통해 전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1등 국민’이 되는 길이라고 선전 선동하면서 일제가 찍어준 가족사진은 ‘나라 잃은 자의 슬픔’을 한눈에 보여준다. 경직된 얼굴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사진을 찍으며 조상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영광스러워했을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강제동원된 조선인들도 일본 패전 이후 전범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연합군 포로 감시 역할을 맡았던 조선인에게 가혹 행위의 책임을 전가했고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하지 못한 연합군은 조선인을 전쟁범죄자로 지목한 것이다. 조선인 148명은 실형에 처해졌고 그중 23명은 사형당했다.

전시관은 건물 4층과 5층, 두 개 층에 걸쳐 많은 패널과 모형, 영상물 등으로 입체적으로 꾸며져 있다. 그중에는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을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코너와 조선인 노무자 숙소, 위안소를 재현한 곳도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외면하고 싶은 역사를 계속해서 마주 볼 수밖에 없다.



 

 



“나라를 빼앗긴다는 건, 인권을 모조리 박탈당하는 것”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중 한 무리의 군인을 발견했다. 집중정신교육시간에 나온 육군53사단 화생방지원대 장병들이었다.

의무적으로 시간을 보낸다기에는 전시물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었다.

“학창 시절 역사책에서 배울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라요. 여기 와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지만 알고 있는 내용도 훨씬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나라를 잃는다는 건 인권을 박탈당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지금 현재 대한민국 군인으로 우리 영토와 국민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신성택(27) 중사는 감격에 찬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부대로 돌아가면 모든 전우에게 이곳에 꼭 한번 방문하라고 전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시관 관람은 해방과 귀환의 역사로 이어진다. 해방 이후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귀환은 일본의 몫이었지만 일본은 방관했고 귀환을 도와야 할 조국은 무정부 상태였다.

스스로 귀환길을 나서다 폭풍과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도 했다. 동료의 유해를 끌어안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안타까운 여정이었다.



 

 

 

 

피해자 증언도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역사 체험장

관람객들은 마지막으로 철길을 따라 걸으면서 거울에 새겨진 피해자의 이름 위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게 된다. ‘시대의 거울’로 명명된 곳이다. 해결되지 않은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 비록 역사를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멀어져가는 기억을 함께 보듬고 되새기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게 될 것이다.

장병들은 부대로 복귀했지만,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가족들, 사진기를 들고 데이트 중인 연인, 방학을 맞아 들렀다는 서툰 한국말을 하는 교포 여학생이 전시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들이, 우리가 써내려갈 것이다.

 

 

 

인터뷰- 김우림 일제강제동원역사관장

“한국형 홀로코스트 박물관 만들겠다”


강의-체험 결합한 아카데미 개설 준비 중

평화·인권의 역사 기억하고 체험하는 세계 관광명소로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지난 6월 김우림(56) 관장이 초대관장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도록도 만들어야 하고 홈페이지도 구축해야 하고 유물관리 기본계획도 수립해야 하고 전시실 등의 인프라도 확충해야지요. 하지만 모두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임 소감과 계획에 대한 질문에 본인의 ‘직무수행계획서’를 통째로 건네줄 정도로 김 관장이 역사관에 쏟고 있는 열정은 대단했다. 고려대 박물관 학예사를 거쳐 서울역사박물관장, 울산박물관장 등을 지낸 최고의 박물관 전문가인 그는 본인이 가진 노하우를 다 쏟아서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한국형 홀로코스트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는 보통 박물관이라고 하면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고 그런 걸 생각하지만,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대표적이지요.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박물관도 있고요. 국보급 유물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역사적·교육적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여행자들도 그 도시를 방문하면 필수적으로 들러야 할 코스로 생각합니다.”

김 관장은 특히 어둡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을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강의와 체험을 결합한 ‘눈높이형 아카데미’를 개설할 계획이고요. 역사관의 입지를 살려 야외에서 펼쳐지는 ‘힐링 콘서트’도 개최할 생각입니다. 11일부터는 첫 특별전으로 국내 유명작가 30여 명이 참여하는 만화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사라진 강제동원 피해자들’(9월 30일까지)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편 김 관장은 앞으로 유품이나 유물 기증자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을 마련하고 기증서와 감사패를 전달함으로써 충분한 예우와 함께 기증운동을 활성화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역사관과 부산시가 힘을 합쳐 주변의 유엔평화기념관, 유엔묘지, 평화공원 등과 연계해 평화와 인권의 역사를 기억하고 체험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해나갈 계획입니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 관람 안내


 

 

관람료는 무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과 추석·설날 당일은 휴관이다. 10인 이상 단체는 사전 예약하면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문의 051-629-8633


박지숙 기자 < jspark@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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