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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용서 그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주형

입력 2015. 07. 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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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분단 70년 미래로 세계로 독일-폴란드 협력모델 기대한다


獨, 2차대전 과오 철저 반성…폴란드와  협력 모델 구축

일본의 진정한 사과만이 한일 간 화해와 상생의 길 열어

 

 

 

 

 

 

 

   지난 5월 3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뮌헨 인근 다하우의 옛 나치 포로수용소를 방문했다.

히틀러가 집권 후 가장 먼저 세운 나치 수용소였다. 메르켈은 그곳에서 생존자들을 만나 고개를 숙이며 “희생자, 우리 자신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결코 역사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이웃한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체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총 560만 명(군인 16만, 민간인 244만, 유대인 300만)이 희생되고 169억 달러(1946년 기준)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폴란드, 나치에 의해 많은 피해 입어



 대부분은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독일에 의해서였다. 앞선 18세기에도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삼국간섭에 의해 130년간 나라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때도 독일이 주범(?) 중의 하나였다. 서로의 화해와 협력이 불가능한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원히 평행선을 유지할 것 같았던 두 나라의 관계는 지금 최상의 협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것은 독일의 용기 덕분이었다. 1969년 집권한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을 추진, 1970년 12월 폴란드와 국교를 수립하고 바르샤바를 방문해 게토봉기영웅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당시 서독 내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나치 독일의 잘못을 인정하고는 있었지만 브란트 총리의 제스처는 세계적으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됐다.

 폴란드·독일 화해는 1989년 최초의 비공산 정부가 폴란드에서 출범한 이후 빠르게 진행됐다.

70~80년대에 두 나라의 화해를 적극 주장하던 언론인 마조비에츠키가 폴란드 총리에 취임했고, 그는 1989년 11월 12일 콜 독일 총리를 초청해 폴란드 남부 크쉬조바에서 화해 미사를 드리게 된다. 미사의 일환으로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양국 총리는 서로 껴안고 등을 두드렸으며, 이 상징적 제스처가 폴란드·독일 화해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지금까지 인식되고 있다.

 또한 1989년 통일 이후 독일 정부는 현재의 국경선을 인정하고 1990년 11월 폴란드·독일 국경조약을 맺었으며, 1991년에는 폴란드와 우호선린조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양국은 비영리 기구인 ‘폴란드·독일 화해재단’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 재단은 나치 독일의 강제노역자 및 수용소 수감자들에 대한 피해배상금 지급,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과거사 교육, 사료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피해배상금 지급 업무는 현재 종료됐으며, 총 40억 유로의 배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독일-폴란드, 우호선린조약 체결



 이처럼 폴란드와 독일의 화해 과정에서 독일 정치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사과 및 사죄 제스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총리와 대통령 등 최고위층 인사들이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전통이 됐다.

 이 같은 독일의 명확한 사과 의지와 폴란드의 관대한 용서가 어우러져 폴란드와 독일은 아픈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었으며, 현재는 가장 가까운 협력 파트너로서 호혜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독일·폴란드와 비슷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한국과 일본이다. 올해는 양국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다. 가까워야하는 관계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계속되는 일본 지도자들의 망언으로 관계는 더 꼬이고 있다. 풀리지 않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과감한 조치) 같은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한국과 일본은 언제든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해 있고 장장 2500여 년에 걸쳐 교류하며 서로의 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웃나라다. 한국과 일본을 떼어놓고는 아시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한일, 잘못된 역사 청산이 우선돼야



 한일 양국의 발전을 위해선 잘못된 역사 청산이 우선이다. 독일과 폴란드는 1972년 ‘폴란드·독일 교과서 공동위원회’를 설립, 두 나라 교과서에서 양국이 서로 해석을 달리하는 부분에 대해 공동 입장을 정립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76년 ‘제1차 공동보고서’를 작성했으며, 2001년에는 ‘20세기의 폴란드와 독일. 역사교육의 방향 및 자료’를 출간하게 된다.

 다행히 한일 양국 관계가 어둡지만은 않다. 한일 간에도 그런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또 지난 10일에는 한국과 일본 국회의원들의 외교 협의체인 한일의원연맹이 일본 도쿄에서 한반도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통해 미래 지향적 관계를 구축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일본 정부의 조속한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는 8개 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한일의원연맹 8개 항의 공동성명 채택


 양국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독일과 폴란드가 그랬듯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다.

 때맞춰 30일 친선특급이 가는 바르샤바 유대인 역사박물관에서 ‘폴란드·독일 화해 과정: 동아시아에서의 화합 모델이 될 수 있는가?’ 제하의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최대 피해국인 폴란드가 가해국 독일과 오랫동안 적극적인 화해 노력을 기울인 결과, 현재 유럽 내에서 가장 긴밀한 협력 파트너로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성공한 사례를 조망하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회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먼저 이를 인정하고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 반대로 우리 정부와 국민은 무조건적인 반일감정을 자제하고 일본을 우리의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사과만큼 중요한 게 용서다. 그것이 한일 양국의 발전을 도모하고 동북아,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길이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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