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비 오는 모스크바에서의 상념 역사를 새겼고 미래를 그렸다

이주형

입력 2015. 07. 28   18:28
0 댓글

<8> 모스크바 박물관과 노보데비치 ?수도원


김규면 선생 항일 투쟁 업적 높이 평가

소련 지도층 무덤 ‘노보데비치’에 묻혀

한러 수교 25주년 기념 음악회 큰 감동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에 도착한 다음날인 27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온 지 사실상 처음 맞이하는 비다. 그동안 내리쬐는 햇빛과 더위로 인한 고생 때문인지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오늘 일정은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를 해소하고자 그랬는지 조금은 여유 있게 짜였다. 먼저 들른 곳은 모스크바 박물관. 역사 이전의 석기시대부터 시작해 모스크바 시의 성립과 발전 모습, 그리고 모스크바 전투 등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생활상에 대해 각종 시청각 자료를 구비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친선특급 참가자들도 열차 안에서의 강의 덕분인지 여기저기 다니며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다. 흐뭇했다. 무릇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설계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역사의 중요성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법이다.

 


 


   모스크바의 또 다른 명소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찾았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1524년 바실리 3세가 모스크바와 스몰렌스크의 연합을 기념해 세웠고, 지금은 여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몰렌스키 사원과 종루 등 16~17세기 러시아 건축의 대표적인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차이코프스키가 수도원을 둘러싼 호수에서 영감을 얻어 백조의 호수를 작곡했다는 사연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에게는 애국지사 백추(白秋) 김규면(金圭冕.1880~1969) 선생이 묻혀 있는 곳으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백추는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자 기독교 목사로 교육 활동에 전념하다 3·1운동 직후 북간도와 연해주에서 ‘대한 신민단’을 조직, 활발한 항일 무장 독립투쟁을 펼쳤다. 특히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 당시 대한 국민회군의 홍범도(洪範圖) 장군과 연합해 일본군을 궤멸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200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사실 노보데비치에 묻힌 사람 치고 유명인사가 아닌 인물이 없다. 러시아 문학의 거두 니콜라이 고골과 안톤 체호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와 2차대전 당시 외무장관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묘역 조성 초기부터 일반인의 매장이 금지됐던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히기 위해서는 정부 허가가 필요하며, 지금까지 모두 2만6000여 명이 이곳에 안장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로 말하자면 국립묘지 격이다. 따라서 백추가 옛 소련 지도층들의 무덤인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혔다는 사실은 소련 당국도 그의 항일 투쟁 업적을 높이 평가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직접 그의 묘소를 방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저 묘소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빌 뿐이다.

   한편 저녁에는 친선특급의 러시아 행사 피날레를 장식하는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한러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볼쇼이홀에서 진행된 음악회에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씨가 참가해 친선특급 참가자들과 현지 교민, 고려인 동포, 러시아 주요 인사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조수미 씨는 공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친선특급의 소식을 듣고 계속 응원해 왔다”며 “베를린까지 무사히 가서 우리가 원하는 평화와 통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 꿈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예술의 거리선 러시아의 록 전설 ‘빅토르 최’ 추모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에는 수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찾는 추모의 벽이 있다.

   아직도 추종자들의 꽃과 담배가 끊이지 않는 이곳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 가수 빅토르 최를 위한 장소다. 그는 1962년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한인 2세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빅토르 최의 인기는 러시아에서만큼은 비틀스에 버금갔다고 한다. 그의 노래에는 유독 자유와 저항을 외치는 가사들이 많다. 그가 활동했던 1980년대 후반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자유에 대한 민중들의 갈망이 가장 강렬했던 시기였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1990년 8월 15일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불과 스물여덟 살. 27일 친선특급 참가자들이 찾은 아르바트의 빅토르 최 추모의 벽은 한눈에 봐도 옆의 건물들과 완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이 지역이 재개발지역이어서 다 허무는데 추모의 벽만은 그를 기리는 팬들이 모여 결사적으로 저지했다고 한다.

   덕분에 추모의 벽만 제외하고 일대의 건물은 모두 새 모습으로 바뀌었다.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부문에서 금메달을 휩쓴 빅토르 안(안현수)도 그에게서 이름을 땄다. 이외에도 고려인으로 러시아 대표 음유시인이 된 율리 김,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루드밀라 남 등 유명인이 적지 않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러시아 속의 한국인들이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