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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춘사 나운규 출생 (1902)

입력 2014. 10. 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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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로 읽는 역사 속 오늘


한국 영화는 1919년 단성사에서 공개된 ‘의리적 구투’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이 영화가 연극과 영화를 결합한 연쇄물이란 점에서 ‘월하의 맹서’(1923)를 꼽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의리적 구투를 한국 최초 영화로 보고 있다. 이후 장화홍련전·운영전·심청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고전문학을 단순히 영화화하는 데 그쳤다. 그 때문에 진정한 한국 영화의 효시는 나운규가 감독하고 주연한 1926년의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렬한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영상화해 한국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아리랑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흥행에서도 대박을 쳤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선풍적 인기 속에 전국 구석구석에까지 상영됐다. 일제에 억눌리고 있던 민초들의 응어리를 풀어내며 조국애를 한껏 고취시켰다.

 1902년 오늘, 한국영화의 선구자 춘사 나운규가 태어났다. 그가 영화를 통해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과 친일 부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1937년 폐결핵으로 요절할 때까지 그가 남긴 영화는 29편, 이 중 각본·감독·주연을 한 영화만도 15편에 이른다. 말년에 제작한 ‘아리랑 3편’은 우리나라의 첫 유성영화 작품이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 영화는 춘사라는 불세출의 영화인이 뿌린 토양 위에 꽃을 피우고 있다. 국방안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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