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정신적 승리, ‘노인과 바다’
늙은 어부, 사투 끝 큰 청새치 포획
돌아오던 중 상어 떼에게 빼앗겨
애써 이룬 것 한순간 물거품 돼도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아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해
소설 ‘백경’을 쓴 작가 허먼 멜빌은 인생을 항해에 빗댔다. 미풍 속에 순조로운 날도 있지만, 폭풍우와 싸우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날도 적지 않은 것이 인생과 닮았다. 오늘은 20세기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헤밍웨이는 1899년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 오늘날의 시카고 근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성악가로 여섯 형제 중 장남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캔자스시티 스타’지의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그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 전선에서 중상을 입었다.
만년에 그는 비행기와 차량 사고 등을 겪으며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하자 결국 1961년에 아이다호 주 자택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헤밍웨이는 행동파 작가로 유명하다. 독서 같은 간접 경험이 아니라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헤밍웨이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의 경험을 살려 전쟁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30년대 중엽 스페인 내란 중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파시스트이자 뒤에 군사 독재자가 된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맞서 활약한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다.
‘노인과 바다’도 마찬가지다. 헤밍웨이는 1930년대 말부터 쿠바에서 생활했다. 삶의 무대를 유럽에서 카리브 해안으로 옮긴 것이다. 이때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 ‘노인과 바다’다. 이 작품은 그가 1961년 생을 달리하기 전 출간한 마지막 작품으로, 말하자면 헤밍웨이의 ‘백조의 노래’에 해당한다. 1953년 ‘노인과 바다’로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이는 그 이듬해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겉으로만 보면 매우 단순하고 싱거운 이야기다.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처음 40일 동안은 마놀린이라는 소년과 함께 있었다. 마놀린은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 역시 마놀린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40일 동안 수확이 전혀 없자, 마놀린은 부모의 명령으로 다른 배를 타게 됐다.
산티아고 홀로 맞이한 85일째 되던 날, 크기가 18척(5m)이나 되는 큰 청새치를 만났다. 엄청난 크기 때문에 사흘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청새치를 겨우 잡아 올렸다. 그런데 배 길이보다도 더 큰 청새치를 끌고 항구로 돌아오던 중, 산티아고는 상어 떼를 만나 청새치를 빼앗기고 만다. 상어들이 청새치의 살을 다 뜯어 먹고 앙상한 뼈만 남겨 둔 것이다.
헤밍웨이가 위대한 작가인 이유는, 이 단순한 이야기에 인생을 투영시켰다는 데 있다. 사투 끝에 잡은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모두 뺏긴 것은 곧 파괴를 의미한다. 낚시라는 게임에서의 패배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들인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돼 절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최선을 다해 물고기와 싸웠기 때문에 결과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무게를 두지 않는다. 청새치를 끌어 올리던 중 산티아고가 계속해서 되뇌는 말,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멋지게 싸운다면, 성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산티아고가 고기잡이하는 드넓은 멕시코 만은 인간이 살아가는 우주와 닮았다. 산티아고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듯이 인간은 이 우주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간다. 산티아고가 힘들게 공들여 잡은 청새치가 상어 떼의 습격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듯이, 인간도 살면서 예상치 않은 우발적인 사건을 만나게 된다. 애써 이룩한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누구나 깊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자포자기하고 싶은 순간,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음미할 수 있는 작품 ‘노인과 바다’를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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