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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때, 꼭 해야 할 말 듣기 좋게 전달하는 지혜를

입력 2016. 05. 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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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권력자에게 간하는 5가지 방법, 골계열전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 사람 순우곤

말솜씨로 위나라 왕 잘못 깨닫게 해

제·초나라 외교 위기도 언변으로 타개

 

리더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성향 지녀

내용 못지않게 간언하는 방법도 중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절대 권력자에게 간언하는 일은 자칫 목숨마저 위태롭게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은 늘 어떻게 전하느냐에 대해 고심해야 했다. 이번 시간에는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깨닫게 하는 설득의 달인에 관해 이야기해 본다. 사기에서는 이런 유형의 인물들을 골계가라고 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논어에 빠진 공자의 일화를 기록했다는 고서)에는 ‘간군오의(諫君五義)’라 해 신하가 권력자에게 간하는 방법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대놓고 말하지 않고 넌지시 돌려 간하는 ‘휼간(譎諫)’, 꾸밈없이 우직하게 간하는 ‘장간(戇諫)’, 자신을 낮추고 납작 엎드려 간하는 ‘강간(降諫)’, 앞뒤 가리지 않고 곧장 찔러 말하는 ‘직간(直諫)’, 마지막으로 딴 일에 견주어 비꼬아 말하는 ‘풍간(諷諫)’이 그것이다.

‘사기’ ‘골계열전’에 등장하는 순우곤이란 사람은 바로 이 오간(五諫)을 때에 맞게 잘 골라 쓸 줄 아는 자였다. 그는 동쪽 제나라 사람으로 몸집은 작고 말솜씨가 일품인 외교관이었다.

순우곤이 위나라에 머물 때의 일이다. 당시 위왕은 후궁들과 함께 주연이나 베풀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순우곤이 간언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어느 날, 왕은 순우곤에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순우곤이 답했다.

“대왕이 계신 앞에서 술을 내려 주신다면 엎드려 마시기 때문에 한 말을 못 넘겨 취하고,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면서 마시면 두 말을 마시기 전에 취하지만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마시면 대여섯 말을 마셔야 취하고,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파하고 남녀 단둘이 마주 대하며 은은한 향내를 풍기면 한 섬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했다.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프지요. 사물이란 지나치면 안 되며, 지나치면 반드시 쇠하게 됩니다.”

왕에게 술에 취해만 있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는 경고가 숨어 있지만 얼핏 보면 그저 자신의 주량에 대한 대답 같다. 바로 휼간이다. 휼간은 말하는 사람이 뒤탈이 없고, 듣는 사람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위왕은 깨달은 바가 있어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순우곤에게 외교 업무를 맡겼다. 그리고는 곁에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도록 했다.

위왕이 시켰다고는 하지만, 어디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쉬운 일이었을까? 순우곤은 이에 여러 지혜를 발휘했다. 한번은 위왕이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음탕하게 놀며 술에 빠져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정치를 경대부에게 맡겨 버리던 때가 있었다. 나라의 존망이 절박한 지경에 놓였지만 주위 신하들 가운데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순우곤은 위왕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냈다. 바로 풍간이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멈추어 있으면서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

그러자 질문의 의미를 깨달은 위왕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위왕이 자신을 빗대 한 말이다. 만일 위왕이 이 문제의 답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순우곤이 어떻게 대답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순우곤은 위왕이 이를 알아챌 만한 사람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 일로 위왕은 다시금 국정에 전념했고, 제나라는 더욱 부강해졌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제나라 왕은 순우곤이 초나라에 고니를 바치도록 사절로 보냈다. 하지만 순우곤은 실수로 이 고니를 날려 보내고 말았다. 난감한 상황에서 그는 한참 고민하다 빈 새장만 들고 초나라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 왕께서는 신에게 고니를 바치도록 했습니다. 물가를 지나는데 고니가 목말라 하는 것을 보고 새장에서 꺼냈더니 날아가 버렸습니다. 목숨을 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사람들이 우리 왕을 보고 새 때문에 선비가 목숨을 끊도록 했다고 할까 두려웠습니다. 다른 고니를 사올까 했습니다만, 이것은 신의 없는 행위로 우리 왕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로 도망치려고도 했습니다만 두 나라 사이 왕래가 끊길까 봐 가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잘못을 자백하고 왕께 벌을 받으려 합니다.”

바로 장간이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간하는 것이다. 자칫 후환이 두려운 간언이지만, 초나라 왕은 벌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순우곤을 칭찬하며 상을 내렸다. 그 상이 고니를 바쳤을 경우보다 더했다고 하니 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혹자는 순우곤이 간언을 할 때마다, 군주의 얼굴빛을 살피며 비위나 맞추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마천은 이런 골계가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충언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큰일을 이룬 높은 자리의 사람일수록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으려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리더에게는 꼭 필요한 말을 때에 맞게, 듣기 싫지 않도록 전하는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아랫사람이나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대상과 상황에 맞게 오간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기분 좋고 힘 있는 말을 할 수 있다.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김원중 단국대학교 교수· 사기 완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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