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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자유분방하고 소통하고…만나 봐야 안다우리소리 맛&멋

입력 2014. 10. 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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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재미있는 풍류이야기 ②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소리


전국 곳곳 ‘내 거’ 있어 … 직접 보고 들어야 아름다움 알아

악보·지휘자 없는 우리 음악 …  서로의 다름 인정하고 존중

소리꾼·구경꾼 하나 되어 소통 … 절제의 미학·품위 돋보여

 


 

너무 늦게 만난 내 거

학창시절 음악 하면 도레미파솔라시도만 있는 줄 알았다. 작곡가 하면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소팽 등만 위대한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는 통기타 치며 팝송 부르는 친구가 가장 멋져보였다. 이러한 문화가 맞는 것인지 안 맞는 것인지에 대해 따져 볼 생각도 못하면서 세월이 훌쩍 흘렀다.

 전북 전주에 근무할 때다. 진달래 피고 지는 환장할 것 같은 봄날이었다. 전주시 노송동 거리를 걸었다. 북소리가 들렸다. 발길이 저절로 북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어느 4층짜리 건물에서 물안개 같기도 하고 운우풍뢰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어보니 연연(娟娟)한 중년 여인이 부채를 쥐고 목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 여자에게 2만 원을 줬다. 우리 소리 가르쳐 달라고. 그날 이후 나는 남몰래 우리 것이면 무조건 챙겨 숨겨 놓았다.

 또 몇 년이 지났다. 벚꽃이 지랄같이 핀 어느 봄날이었다. ‘꽃 마중 길에 만나는 마지막 해어화’ 여행을 떠났다. 군산 월명공원에 파시(波市)가 열렸다. 일제 강점기 때 소화권번 출신 기생 장금도를 만났다. 해금이 울렸다. 북소리가 울렸다. 춘향가 눈 대목 사랑가가 불려졌다. 오래된 짜장면 집 ‘빈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짜장면 곱빼기가 나왔다. 고량주도 나왔다. 장구소리에 맞춰 육자배기가 신묘하게 방안을 메웠다. 기생 장금도가 민살풀이 춤을 췄다. 미롱(媚弄:춤의 절대 경지에서 살포시 웃음을 지음)이었다.

 햇살이 하얗게 내려앉던 초가을날 진도를 찾았다. 울돌목이 와랑와랑거렸다. 이순신 장군의 북소리가 들렸다.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 굿판이 벌어졌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 씻김굿이었다. 남도에서는 풍물을 군인이 치는 북이라 해서 군고(軍鼓)라고 부른다. 이 군고(軍鼓)의 장단과 가락이 굿판에서 나왔다. 대한민국의 얼, 단군 후손의 민족혼이 숨 쉬고 있었다.

 밀양시 영남루에 늦여름 매미 소리가 울렸다. 처∼억 늘어뜨린 하얀 끈에 매달린 큰 북이 둥둥거렸다. 고성 오광대 덧배기춤이 장단 타고 땅속으로 곤두박질쳤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런 춤 위로 그 옛날 꽃잎 같은 손으로 왜장의 목을 안고 강낭콩보다 더 푸른 물결 위로 떨어진 기생 논개가 보였다.

 서울 익선동 낡은 기와지붕 밑에, 만경 김제 평야 지평선 너머, 남원 광한루 오작교 위에, 구례 지리산 자락에, 섬진강 물결 따라, 점점이 흩뿌려진 진도 세방낙조 속에, 제주도 하루방 바지저고리 속에 몇천 년을 이어 내려온 내 거가 그렇게 있었다.

만나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소리

우리 소리는 만나 봐야 비로소 그 맛과 멋을 알 수 있다. 하늘이 준 육신으로 보고, 듣고, 맡고, 핥고 느껴 보면 우리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다.

창덕궁 돈화문으로부터 종로 3가역까지의 거리를 국악거리라고 한다. 낙후된 군청(郡廳) 소재지 같다. 뒤꿈치를 들고 손을 쭈∼우∼욱 뻗으면 닿는 기와집 처마. 먼지 낀 낡은 간판. 울긋불긋 단청된 국악기. 잠든 소나무 어깨 춤 추고, 목 쉰 까치 우는 것 같은 국악거리 뒷골목에서 귓속에 들어 있는, 입속에 들어 있는 우리 소리를 꺼내 보면 꼭 이렇다.

 풍류 하나. 즐겁되 문란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다. 아무리 흥이 나도 그것이 인륜을 저버리는 풍기문란으로는 흐르지 않는다. 아무리 슬퍼도 몸을 상하게 할 지경까지는 안 간다. 절제의 미학이 들어있다. 정리 정돈된 인격의 품위가 배어난다. 이것이 유형의 모습으로 나오면 기와지붕 처마 끝선이 되고, 초가지붕 위의 둥근 박이 된다.

 풍류 둘. 자유분방하다. 서양은 심장(心腸) 문화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심장(心腸)이 멎었다’ 한다. 우리는 호흡(肺·폐) 문화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숨이 멎었다’ 한다. 서양 음악은 지휘자와 오선 악보가 있다. 우리는 지휘자가 없다. 악보도 없다. 서양 음악은 지휘자가 지휘하는 대로 오선 악보에 기록된 대로 심장 박동 수에 맞춰 연주하고 노래한다. 우리는 각자의 악기와 각자의 소리꾼이 자신의 호흡에 맞춰 그저 연주하고 노래할 뿐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개개인의 능력과 장점을 최대한 살린다. 우리 소리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리와 같다. 부대에서 이를 지휘기법으로 활용하면 전투력이 향상될 것이다.

 풍류 셋. 하늘에서 나와서 사람에게 붙인 소리다. 허(虛)에서 발해 자연으로 이루어진 소리다. 우리의 악기는 모두 자연 속에서 형성 발전했다. 모든 악기가 자연 소재로 이뤄져 있다는 뜻이다. 오동나무, 대나무, 무명실, 자연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 소리는 전기를 넣어 만든 음향기기를 통해서 들으면 제 맛이 안 난다. 맨 방에서 가야금, 거문고, 대금 소리를 들어야 제 맛이 난다.

 풍류 넷. 소통한다. 메기고 받으며 서로의 감정을 더듬는다. 얼씨구!(얼을 심는다는 뜻) 하며 추임새를 넣으며 소리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된다. ‘네 말 들으니 네 입장 이해가 된다’는 것이 우리 소리 후렴구다. 아리랑 후렴구가 그렇고, 남도소리 흥타령의 후렴구가 그렇다. 이렇게 소통하며 맺혔던 것을 풀어 헤친다. 화합하고 단결하며 희망의 미래로 나간다. 이것이 우리 소리다.

<(사)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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