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창설 70주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해군의 시작
광복 직후 손원일, 정긍모 등 해양 선각자들이 ‘조국 광복에 즈음하여 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킬 동지를 구함’이라는 광고를 냈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1945년 8월 21일 해군 창설 준비 단체인 ‘해사대’를 결성했고 이어 1945년 11월 11일 11시 ‘해군은 신사도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는 비전 속에 3군 중 가장 먼저 해군의 모태인 ‘해방병단’을 창설했다.
1946년에는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를 창설해 사관 교육을 시작했고 군함 수리 및 건조 업무를 위한 조함창을 창설했다. 군 위계질서 확립을 위해 계급을 제정했고 미군으로부터 상륙정·소해정 등을 인수해 군함을 확보하는 한편 인천을 시작으로 목포, 묵호, 부산, 군산, 포항, 진해에 해군 기지를 창설해 해안경비태세를 갖췄다.
1948년 8월 15일 중앙청에서 거행된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에서 최초로 ‘대한민국 해군’이라는 ‘페넌트(Pennant)’를 정모에 두르고 참가해 해군의 존재를 알렸고 같은 해 9월 5일 정식 발족했다.
● 첫 전투함 백두산함(PC-701)
해군의 첫 전투함 구입은 손원일 제독에서부터 말단 수병에 이르기까지 해군 장병 모두의 하나같은 열망과,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후원해준 해군 장병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군은 스스로의 힘으로 전투함을 구매하기 위해 ‘함정 건조기금 거출위원회’를 결성했고 장병들 월급에서 5~10%씩을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부인회는 삯바느질, 바자회 등으로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1만5000달러에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4만5000달러를 보태 1949년 10월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을 미국으로부터 인수했다.
● 해병대의 탄생
1948년 10월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의 필요성을 인식한 손원일 제독은 신현준 당시 중령을 초대 해병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해군 장병 380명으로 해병대를 창설했다. 이후 해병대는 진주와 제주에서 출몰한 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되어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해병대란 이름을 처음으로 국민에게 알렸고 6·25전쟁 중에는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 6·25전쟁과 해군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최초의 승전보인 옥계해전, 부산으로 침투하는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대한해협 해전, 한국 해군과 해병대가 단독 감행한 첫 상륙작전으로 ‘귀신 잡는 해병대’란 신화를 얻게 한 통영상륙작전 등을 통해 해군은 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조국을 지켰다.
특히 해군은 국군과 유엔군이 수세에서 벗어나 반격을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를 통해 전쟁의 흐름은 수세에서 공세로 완전히 바뀌게 됐고 전 국토가 북한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서 벗어났다.
●전후 조직 정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조인으로 3년간의 피어린 동족상잔의 전쟁이 종식된 이후 해군은 해군본부를 부산에서 서울로 이전하고 조직을 정비했다.
또 1953년 9월 10일에는 한국함대(제1호송전대, 제3경비전대, 제5경비전대, 제6소해전대, 제7보급전대, 함정교육단)를 창설했다.
이어 1955년 3월 1일에는 한국함대를 호송 및 경비작전을 위한 제1전단, 상륙작전을 위한 제2전단, 소해 및 기뢰전을 위한 제31전대, 해상군수지원을 위한 제51전대, 함대 훈련태세 유지를 위한 함대훈련단으로 개편해 체제의 기틀을 다졌다.
● 도약의 발판
6·25전쟁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미국 함정 대여에 관한 각서’가 체결됨에 따라 해군은 미국으로부터 경비함·상륙함·호위구축함 등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해군은 함대를 창설하고 다양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를 만들 수 있었고 선진 해군의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 함정 인수와 함께 해군은 1954년 9월 1일 남해경비 및 봉쇄작전 지휘권을 미국 기동함대사령관으로부터 인수했고 이어 1955년 1월에는 동해의 지휘권을, 3월에는 서해의 지휘권을, 1956년 4월 1일에는 동·서·남해의 해상 작전지휘권을 인수했다.
● 완벽한 해상방위체제 기틀 마련
197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해군은 국내 기술로 건조된 신예 국산전투함을 주축으로 전력구조를 개편하고 대잠초계항공기와 함재 헬기, ‘현대전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유도탄 등 적의 해상도발을 억제·격멸할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함으로써 자주국방의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게 됐다. 특히 국민의 방위성금으로 건조된 국산전투함에서 실시한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은 국민들에게는 자신감과 긍지를 불어넣어 주는 한편 해군 전력건설에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해군은 전투임무 수행에 적합한 조직개편, 전술교리 개발, 군수관리 기능의 효율적인 개선 등을 통한 최고도의 전비태세를 유지하게 됐다.
● 베트남전과 해군
해군은 베트남전쟁에 전쟁물자 수송을 위한 백구부대와 지상전투를 위한 청룡부대를 파병했다. 백구부대는 탄약과 중장비 등 해상수송임무와 의료 및 대민지원 등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며 1973년 4월 3일 부산항으로 최종 철수하기까지 지구를 약 27바퀴 돈 거리인 총 66만7947NM을 항해했다.
또 대한민국 역사상 첫 번째의 전투병력 해외 파병부대로 기록된 청룡부대는 짜빈동전투를 통해 외신들로부터 ‘신화를 남긴 해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 해병대의 위용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외에도 베트남전쟁에서 해군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해외 국민 철수 작전인 십자성작전을 통해 우리 교민과 베트남 피란민 1902명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 연안해군에서 지역해군으로
1992년 숙원이었던 최초의 잠수함 장보고함을 독일에서 도입한 해군은 이후 국내 기술로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신형 해상초계기인 P-3C 항공기를 도입해 명실상부한 수상·수중·항공 입체 전력을 갖추며 완벽한 해상작전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1998년 3000톤급 한국형구축함(KDX-I) 광개토대왕함을 건조해 작전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하지만, 동북아 주변국들의 해군력 증강에 따른 한반도 주변 해양안보환경의 변화는 우리 해군을 여기서 멈출 수 없게 했다. 변화하는 해양안보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연안해군의 단계를 벗어나서 지역해군으로의 발전이 요구됐고 이에 따라 해군은 21세기 해양의 시대를 대비한 해군력 건설을 위해 총력을 다했다.
● 70년간의 성장
해군은 지난 70년간 국민의 후원과 함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며 발전해 왔다. 1945년 70명의 해방병단으로 출발한 해군은 현재 7만여 명에 가까운 해군·해병대로 성장했다. 영해수호는 물론 해외파병지와 세계 곳곳에서 선진국 해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 세계를 활동 무대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잠수함과 해상초계기를 도입하고, 한국형 구축함을 시작으로 ‘신의 방패’로 불리는 이지스함에 이르기까지 정예화되고 균형적인 전력을 건설해나가고 있다. 국민의 지지 속에 성장해온 해군은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전 세계를 누비며 우리 국민을 지키는 해군으로 발전했다.
[해군, 미래를 말한다 - 향후 발전 과제]
1. 강한 해군 (Powerful Navy)
- 미래 위협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
해군은 주변국과의 분쟁을 억제하고 분쟁 발생 시에는 조속히 해결할 수 있는 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수상·수중·항공의 입체적인 균형 전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해에서 유·무인 공격기를 탑재하고 운용하는 대형함정과 장시간 작전수행이 가능한 신형 대잠초계기를 확보해 실질적인 현시와 억제가 가능한 기동부대를 유사시에 즉각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미래형 추진체계를 탑재해 치명성과 은밀성을 갖춘 잠수함을 확보함으로써 잠재적 위협국에 대한 전략적 억제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해군력의 기반인 함정·잠수함·항공기 등을 운용하는 전문화된 간부가 필요하며 임무 수행에 필요한 적정수준의 병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해군의 현실은 병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함정 건조를 늦추고 육상부대 병력을 줄여서 재배치하고 있다. 그마저도 한계에 이르러 부대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앞으로 해군이 주변국과의 해양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균형전력을 건설하고 강한 해군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병력을 확보해야 한다.
2. 필승해군(Undefeated Navy) - 위협에 창조적 대비
앞으로 해군은 우리나라와 국민에 대한 전통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신종 위협들을 제압해 나가야 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육·공군과 합동성을 강화해 군사력 운용의 시너지를 창출함은 물론 해군과 해경 간의 상호운용성을 증대해야 한다.
또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공동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포괄적 안보협력 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세계 주요국 해군과 공조와 협업을 강화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위한 다자 해군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도 있다. 특히 해군은 우리 선박의 주요 항로인 말라카해협, 소말리아 근해, 북극항로 등의 해상교통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3. 선진해군(Advanced Navy) - 도약적으로 발전
미래의 첨단과학기술은 전쟁의 양상과 군대의 모습을 변화시킬 것이다. 특히 전승을 달성하려면 과감하고 혁신적인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해군은 첨단과학 소프트웨어 기술을 적용해 전투능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공지능(AI) 기술과 사물인터넷(IoT)을 함정이나 해군 조직에 적용함으로써 부대관리를 최신화하고, 빅데이터·3D프린터·사고예측 분석기법 등을 활용해 효과적인 부대운영을 해나감으로써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해군을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군’으로 불리는 해군이 혁신기술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접목한다면 선진해군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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