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해군·해병대

부대열전<17>해군9전단 이천함

이석종

입력 2011. 05. 1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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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발의 어뢰로 적 침몰시킨다


이천함 승조원들이 잠수함 전술훈련장에서 어뢰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항해 중인 이천함.
1999년 서태평양 훈련에서 이천함이 쏜 어뢰에 명중해 오클라호마 시티함이 침몰하고 있다.

“어뢰발사 준비!”

 함장의 명령에 각종 탐지장비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전부인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 비켜가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함내를 승조원들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어뢰발사 2분 전.”

 승조원들은 각자의 콘솔 앞에 앉아 임무에 맞춰 방향ㆍ거리ㆍ접촉물 유무 등을 수시로 함장에게 보고했고 그 보고를 종합해 함장은 어뢰 발사 시기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드디어 “발사준비 끝”이라는 보고가 함내에 울려 퍼지고 함장의 발사 명령에 따라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10, 9, 8, … 2, 1, 발사.”

 순간 긴장감 넘치던 함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수중에서 발사된 어뢰는 생각보다 더디게 움직였다. 움직이는 동안 함내에서 방향을 조정할 수도 있었다. 승조원들은 발사된 어뢰가 목표인 가상의 적 수상함에 명중할 때까지 어뢰의 방향이나 속도를 조절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쿠쿠쿠쿵 꽝!”

 함내 스피커를 통해 음탐장비에 포착된 어뢰의 폭발음이 들렸다. 다시 함내가 분주해졌다. 함장이 순간적으로 잠망경을 올려 수면 위의 표적 상태를 확인, 명중을 확인하면서 이날 훈련을 마무리됐다.

 실제 잠수함 내부와 유사하게 만들어진 해군9전단 잠수함전술훈련장에서 펼쳐진 어뢰 발사 훈련이었다. 이날 훈련에 나선 장병들은 이천함 승조원들.

 전투정보관 김종건 중위는 “항상 출동에 앞서 이 같은 전술훈련을 통해 실전감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군사전문지 ‘성조(Stars And Stripes)’지는 1999년 3월 27일자 1면 머리기사로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 이천함을 올렸다.

 전날인 26일 서태평양 괌 인근 해상에서 펼쳐진 서태평양 훈련(Tandem Thrust)에서 이천함이 발사한 어뢰 한 발에 외부 장갑의 두께가 25cm에 이르는 1만1000톤급 퇴역 순양함 오클라호마 시티함이 격침돼 25분 만에 태평양의 심연으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천함 어뢰 발사 훈련 이후에도 각국에서 참가한 함정들의 유도탄ㆍ어뢰 등의 발사 훈련이 계획돼 있었지만 표적이 침몰해 이후 훈련은 모두 취소됐다.

 이천함의 놀라운 전과는 훈련에 참가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잠수함 보유국들에게 대한민국 잠수함의 위력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병기장으로서 어뢰발사 준비 임무를 담당했던 박후구 이천함 주임원사는 “약 50m 잠항한 상태에서 어뢰발사 이후 8000야드(약 8km) 떨어져 있는 오클라호마 시티함이 침몰하는 광경을 각국의 잠수함들과 함께 지켜봤다”며 “한 발의 어뢰로 침몰될 것이란 예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 성조지에 대서특필된 것 같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성조지는 이 같은 사실을 “It was One Shot, One Hit, One Sink!”라며 대서특필했고 이때 이후 현재까지 이 표현은 해군9전단의 전투신조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 해군의 모든 잠수함 승조원들은 출정식에서 “One Shot, One Hit, One Sink”를 외치며 적이 도발한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눈앞에 닥치더라도 1999년 3월 괌의 통쾌한 일발필중의 영예를 또다시 실현 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진 후 출동하고 있다.

 이천함 병기부사관 조영일 중사는 “9전단의 자부심이자 대한민국 해군의 긍지인 ‘One Shot, One Hit, One Sink’의 신화를 창조한 이천함의 승조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자랑스러운 전우들과 함께 신화를 재창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천함장 이경래 중령도 “선배 장병이 일궈낸 일발필중의 신화는 영원히 지속할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라며 “끊임없는 전술훈련과 항재전장의 정신 무장을 바탕으로 어떠한 적의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왜 이천함인가?

209급 잠수함 2번함으로 최초로 국내에서 건조된 잠수함인 이천함은 고려시대 수군 명장 이천(李仟) 장군의 이름에서 함명을 따왔다.  이천 장군은 고려 고종 18년(1231년)부터 시작된 몽골의 침입에 대항, 응양대장군(鷹揚大將軍)으로서 서해안의 해상교통로를 확보해 강화도로 천도한 조정을 보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고종 43년(1256년) 6월 23일, 수군 200여 명을 지휘해 몽골군이 주둔하고 있던 온수현(溫水縣ㆍ충청남도 아산군)을 공격, 몽골군을 격파하고 사로잡혀 있던 고려 양민 100여 명을 구출했다.  이 전투가 대몽(對蒙) 항쟁기 최초의 수군 승전인 온수현 대첩이다. 이 전투에는 신술(神術)이라고 평가받는 ‘특수 잠수선을 이용한 상륙작전’이 구사됐다.
 
이천 장군은 대몽 항쟁기의 뛰어난 공적을 바탕으로 ‘중서시중문하평장사(中書侍中門下平章事)’라는 최고위 관직을 지냈다.이천 장군의 호국의지를 담은 이천함은 1989년 11월 1일 대우조선이 건조에 착수, 92년 10월 12일 진수됐고 94년 4월 30일 해군에 인도, 그해 5월 20일 취역했다.
 

“전투형 군대 확립에 지휘 중점”-이천함장 이경래 중령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천함의 함장이라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적에게는 두려움을, 아군에게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잠수함, ‘수중무적’ 이천함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잠수함의 새 역사를 창조하겠습니다.”

 이경래(중령ㆍ사진) 이천함장은 이천함의 가장 큰 자랑으로 완벽한 전비태세와 자신감을 꼽았다.

 이 함장은 “모든 승조원은 항상 ‘One Shot, One Hit, One Sink’라는 전투신조를 외치며 ‘일발 격침의 전투 의지’로 무장돼 있다”며 “언제 어디서나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파이트 투나잇’의 완벽한 전비태세와 자신감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함장은 “전투형 군대 확립에 지휘중점을 두고 있다”며 “ ‘강력한 이천함’을 비전으로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항전준비’ ‘원칙준수’ ‘일치단결’이라는 지휘방침으로 부대를 지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투력과 직결되는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함장이 직접 주관하고 집행하는 지휘관 중심의 정훈활동 체계를 구축한 것은 물론 ‘만전지계(萬全之計)’의 전비태세 구축을 위해 실전적인 교육ㆍ훈련 체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이 함장의 설명.

 또 이 함장은 “모든 작전ㆍ훈련 계획을 액션 플랜으로 작성함으로써 업무 효율을 향상시켰다”며 “이를 통해 이천함 승조원들은 최고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이 함장은 “전투형 군대의 핵심인 전투와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부대 구석에 숨어 있는 불합리한 행정적ㆍ관료적 요소를 식별해 폐지하고 성과 없는 반복적 관행적 업무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함장은 “잠수함의 전투력은 함장의 전투수행능력과 직결된다”며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싸워 이기는 천하무적 이천함을 만들어 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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